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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Nov 14. 2017

엄마를 몰라

주말에 대구에 다녀왔다. 내가 태어나서 살았지만 지금 엄마가 살고 있지 않다면 지금만큼 자주 갈 일 없었을 테니, 내가 다녀온 곳은 '대구'라는 장소보다는 '엄마'라는 존재에 가깝다. 주말에 엄마에게 다녀왔다.


이번 주말은 엄마, 남동생, 조카 보경이와 셋이 지냈다. 조카에게 24/7 꼼짝없이 매여있는 올케를, 올케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줄 수 있고 나와 엄마는 자주 못 보는 조카와 하룻밤 같이 지낼 수 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물론, 매일 출근해서 일하고 주말엔 또 육아를 함께 해야 하는 남동생도 어디든 보내주고 싶었지만 육아가 일상인 동생이나 올케와 달리 엄마와 나는 육아가 이벤트이기 때문에 동생 없이는 해낼 자신이 없었다.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채 사랑하는 조카를 돌본다는 건 문자 그대로 굉장히 겁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으니까.



엄마,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조카와 보낸 일박이일 동안 가장 많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수행한 건 엄마였다. 


아빠만이 할 수 있고, 아빠에게만 허락하는 수행 같은 건 물론 완전히 남동생의 몫이었기 때문에 엄마와 내가 있다고 해서 남동생이 돌보는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올케와 둘이서 나누던 부담을 셋이서 나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진 않았을 것이다. 내 경우엔, 완전히 혼자 지내다 조카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감행한 것은 맞지만 혼자일 땐 누릴 수 없었던 보살핌을 엄마로부터 너무 충분히 제공받았기 때문에ㅡ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아이처럼 보살핀다ㅡ역시 평소보다 더 많은 노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침 여덟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난 조카와 가장 먼저 놀아주기 시작한 것도 엄마였고, 점심 먹고 식곤증을 이기지 못한 나와 목욕탕에 다녀와 열기를 떨치지 못한 남동생이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엄마는 쉬지 않고 조카와 놀아줬다. 밥을 해 먹이고 밖에 데리고 나가 킥보드를 태우고 틈틈이 간식을 먹이고 뛰어다니다가 어디 다치진 않을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면서, 와중에 조카가 아빠나 고모를 깨우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것까지 방어해가면서.


조카와 남동생은 일요일 저녁 일곱 시가 다 돼서 돌아갔다. 엄마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주말연속극을 한 시간 남겨둔 시간이었다. 조카가 가자마자 자리에 누운 엄마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버텼다. 엄마 덕분에 낮잠을 실컷 잔 나는 엄마가 자는 동안 절대로 잠들지 않겠다고, 드라마가 시작되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틀림없이 깨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는 그 즉시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엄마가 말했다.


"이상하게 보경이가 왔다 가고 나면 기분이 울적해."


"왜? 허전해서?"


예전에 엄마가, 허전하다고 했다. 나도 서울서 다녀가고, 동생네도 비록 가까이 살지만 다녀가고, 그러고 나서 혼자 집에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더 허전하다고.


"허전한 거야 당연히 그런데, 모르겠어. 이건 허전한 거랑은 또 달라."


엄마한테만 맡겨두고 낮잠을 자버린 게 엄마한테도, 조카한테도 미안했기 때문에 나는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엄마 혼자 보경이 보는 동안 우리가 둘 다 자버려서 그렇지? 미안해..."


엄마는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왜 울적해?"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허전해서도 아니고, 엄마에게만 책임 지워서도 아니고, 둘 다 아니라고 하니 더 이상 동원할 상상력도 없었다. 엄마 역시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해서라도,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항상 희생하기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서라도, 그 울적함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게 뭔지 알아내면 해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빈곤한 상상력을 동원해 한번 더 시도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몸이 피곤해서?"


"뭐 몸이 피곤한 것도 맞는데, 잘 모르겠어. 그냥... 뭘 해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더 잘 해줄 수 있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렇게 못해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근데 또 딱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엔... 잘 모르겠네."


나는 일단 너무 놀랐다. 그렇게 해주고도 덜 해주고 못 해준 것 같아서 미안함을 느끼는 엄마가, 사랑하는 조카와 멀리 떨어져 사는 딸과 자기만의 가정을 이룬 아들과 함께 지내며 느끼는 행복을 짓누를 만큼 무거운 의무감을 안고 있는 엄마가, 너무 놀라웠고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가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다면 나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엄마와 남동생과 나는 모두 회사에 다닌다. 그중 엄마가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고 가장 많은 요일을 일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집에 가면 일하느라 피곤하니까 쉬라고 한다. 설거지도 못하게 하고 먹은 걸 치우려 해도 자꾸 두라고만한다.


도대체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항상 희생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엄마는 왜 이미 너무 많이 해주고도 항상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미안해하는 걸 넘어 울적해져 버리는 것일까. 엄마가 이 이상 어떻게 더 해주느냐고, 지금도 너무너무 대단하고 놀랍고, 우린 항상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그 말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게 "아니야, 엄만 너무 충분해."라는 말을 듣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동원해서 엄마를 위로해 볼 텐데, 그 어떤 말로도 엄마의 울적한 기분을 달래줄 수가 없을 거라는 게 느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속상하고 달랠 수 없이 가슴 아파서, 엄마 옆에서 하룻밤 더 자고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순간에도 내가 잘한 점을 생각하는구나, 엄마가 느끼는 그 울적함의 실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주 단순하게 딱 내가 할 수 있는 그 선에서 자위하고 마는구나...



하룻밤이 지나 나는 아침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 엄마를 두고 와서 일하고 점심 먹고 저녁 먹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글로 쓰다 보면 엄마가 느낀 그 울적함의 실체를, 엄마도 스스로 잘 설명해내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정체를 어쩌면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고, 모르는 채로 졸음을 맞는다. 엄마의 모든 슬픔과 외로움과 우울함 같은 낮은 감정들을 내가 완벽하게 위로하고 싶어 하는 게 너무 큰 욕심일지 모른다. 겨우 이게 결론인가. 참 서글프다. 나는 왜 엄마를 다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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