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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Nov 14. 2017

winter chill / hed kandi

칠칠한 겨울


북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8월도 바람 불면 겨울 같고 9월도 그늘에 서면 겨울 같으니 진짜 겨울은 얼마나 추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에서 반 년 정도 지내게 됐을 때, 그나마 남부라 기다란 스웨덴 땅 북쪽보다는 훨씬 따뜻한데도 나는 많이 추웠다.



날씨도 춥고 돈이 넉넉하지도 않아 추울수록 기숙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방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 바로 윈터칠(Winter chill) 시리즈였다.


Hed Kandi라는 영국 레이블에서 당시의 chill한 음악들을 모아 시즌마다 2cd로 아주 넉넉하게 앨범을 냈는데, 음반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참새 시절 우연히 이 앨범을 발견하고 애정하게 됐다.


윈터칠에서 소개하는 뮤지션들을 대부분 알지 못했고, 헤드 칸디도 몰랐고, 칠한 음악이라는 게 정확히 뭐다 설명도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앨범 재킷 사진이 너무 내 스타일 아니었음에도, 전혀 정보가 없었던 음반을 사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의 조각조차 남아있지 않다.


다만 랜덤플레이 중에 윈터칠 음반에 실렸던 곡들을 듣게 되면 나는 반드시,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 언저리의 나이기도 하고, 거기서 입었던 어떤 옷이기도 하고, 당시에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기도 하고, 떠오르는 형태나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반드시 뭔가는 떠오른다.


마치 씨디 뒷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음악을 재생하는 신호들이 가득하고 그것들의 조합으로 한 곡이 완성되는 것처럼, 마치 반도체칩처럼, 그때 들었던 한 곡 한 곡이 빼곡하게 그 시절을 모두 기록해놓은 것만 같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 추워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들었던 칠한 음악들이 바깥의 겨울과 방안의 나를 이었다. 음악들은 한결같이 한겨울처럼 춥지는 않으나 항상 겨울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 겨울 마치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던 나를 그때의 그 온도 그대로 보존하는 용액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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