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요

제1회 인천 독립출판*동네책방 "만국시장 별책부록"

by Mihyang Eun

시월 십사일 토요일에 인천 배다리에 갔다. 배다리는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다. 영향력 서울지부원의 집에서 딱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원래 열 시 반까지 도착해서 준비하고 열한 시부터는 사람들을 맞아야 했는데, 늦었다.

늦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다가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미리 내리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겠다 생각하다가 지름길이길 바라며 갔던 곳에서 막다른 골목을 만나기도 했다.

아 드디어 저기 행사장소인 듯한 곳이 보이는군! 했을 때는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상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해서 그게 뭐라고 잠깐 좌절도 했다. (책이 스무 권 넘게 든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동인천역에서 배다리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보도블럭이 깔려 있어서 끄는 소리도 요란했다.)

유혹하는 오래된 헌책방들을 과감히 지나치고 거의 정각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많이 못 팔 것 같다, 그리고 못 팔아도 너무 예쁜 곳이니까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



다행히 조금 안쪽에 자리를 잡게 됐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준비했다.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하며 가져간 테이블보가 사실은 테이블이 비해 작다는 사실에 잠깐 당황했지만 오래 당황할 시간이 없으니까 당황은 조금만 하고 책을 꺼내 순서대로 얹었다.



영향력은 지금까지 여섯 권이 나왔으니까 일 호부터 육 호까지 차례대로 놓고, 영향력 서울지부원이 독립출판으로 낸 첫 책도 몇 권 가져다 놨다. 비록 판매가 안 될지언정 책방에 모두 입고해서 없었던 책이, 몇 군데 책방이 문을 닫으며 돌려주셔서 다시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텀블벅 리워드로 만들었지만 조금 남아 갖고 있었단 광목천으로 만든 책보, 책갈피치고는 좀 커다란 은색 철제책갈피, 일 호부터 육 호까지 실린 모든 작품들 속 문장을 발췌해 만든 영향력 노트도 함께 가져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보나 책갈피는 책을 사면 포장해주고 끼워주는 사은품이라고 생각했고, 노트는 책이라고 기대했다가 노트라서 실망하는 결과만 만들었다. 다음에는 실망방지를 위해 춤목마다 따로 명찰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많이 못 팔았다. 모자이크는 덤이고, 영향력을 많이 팔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모자이크 두 권이 팔릴 동안 아무도 여섯 번째 영향력을 사가지 않았다. 모자이크를 갖고 갔기 때문일까 마음이 불안했다.

차라리 내가 없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가려나 해서 괜히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에 가려면 다시 배다리삼거리로 갔다. 올 때 길을 건너려고 내려갔던 지하상가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지하상가 출입구 쪽에는 요일마다 다른 분들이 다른 콘셉트로 운영하는 요일가게와 나비날다책방이 있었다. 헌책방거리로 유명한 배다리인 만큼, 지하상가 출입구엔 나무로 새긴 책장이 있었는데 두 권은 누군가 가져갔는지, 빌려갔는지, 훔쳐갔는지, 없었다.


마켓이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이 급해 그냥 지나쳤지만, 이번에도 헌책방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들어갔다.

아벨서점과 한미서점에 들어가 절판돼서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아봤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의 『밤 끝으로의 여행』을 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책장 사이사이를 통과하다가 책을 찾아주십사 부탁드렸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영향력에 글을 꾸준히 투고하고 있는 작가 줄리앙이 인스타그램에서 꾸준히 인용하며 애정을 밝힌 책이라 궁금했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중고의 흔적조차 없어서 그때부턴 갖고싶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에 명문당에서 『밤의 끝까지 여행을』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 2004년에 동문선에서 『밤 끝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 번 출판했다.



아벨서점에서는 프랑스소설을 모아놓은 서가로 안내해주시고 같이 책을 찾아주셨다. 한 번 들어온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계셔서 구하지 못한 게 더 안타까웠다.



한미서점에서도 문의 드렸다. 여쭤봐놓고 책을 구경했는데 세 권을 골라 나오는 동안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찾아보셨는지, 사장님은 나온지 오래된 책도 아닌데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하셨다. 온라인에서 중고거래된 흔적이 있다면 대략 얼마에 거래됐는지 등등 관련 정보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찾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비록 찾는 책을 찾진 못했지만 생각지 못한 책을 세 권 구했다.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
by 제니퍼 린치
1992, 도서출판 대성

트윈픽스 시즌3가, 시즌2 피날레에서 약속한 것처럼 정말로 25년 후(실제로는 26년 후가 됐지만) 나와서 요즘 틈틈이 보고 있는데, 트윈픽스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인 로라의 일기를 책으로 펴낸 적이 있었단 걸 서점에서 처음 알게 됐다. 스핀오프 격인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는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의 딸인 제니퍼 린치가 쓴 것이었다.


『나의 사랑 까스또르』
by 싸르트르
1976, 신원문화사

『나의 사랑 까스또르』는 사르트르의 미공개 편지를 모은 책이었다. 무려 1976년에 신원문화사에 나온 책으로 온라인서점에서는 검색도 되지 않는 책이었다. 유명한 문인들의 편지를 읽는 걸 좋아한다. 내가 받은 편지도 아닌데, 아무래도 편지는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라서 괜히 흥분된다.


『표절』
by 장 자크 피슈테르
1993, 책세상

마지막으로 고른 책 역시 현재 절판본으로, 장 자크 피슈테르의 『표절』. 표절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는 이 이상이 나오기 힘들 거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라기에 구매했다. 이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나 책을 많이 봤지만 더 일찍 나온 책의 놀라움과 아우라를 넘기 힘들었을 테고, 원전을 읽고 싶었다.

화장실 갔다가 거의 한 시간을 헌책방에서 헤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왔다.



영향력을 처음 판매한 것은 오후 세 시가 가까워서였다. 그리고서 여섯 시에 끝날 때까지 두 권을 더 팔았다. 그중 한 권은 아벨서점 사장님이 사가셨는데 한 자 적어달라고 하셨다. 제가 혼자 쓴 책도 아닌데.. 하며 쭈볏거렸더니 대표로 쓰라고 하셨는데 포스에 눌려서 생각도 않고 일단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히기를"이라고 쓰려던 것을 "잃히기를"로 쓴 다음 "잃"자를 "읽"자처럼 고쳐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읽을 수 없는 글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써서 드리고 그 부끄러운 책을 회수해와서 영영 없애버렸겠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군..

들고간 책 다 팔면 옆에 있는 김용호 작가님이 만든 도마를 사려고 했는데, 결국 도마가 작가님의 캐리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흘끔거리며 고민하다가 사지 못했다. 아, 또 눈물이 날 것 같군. 하하.

하지만 고맙게도 북극서점에서 책을 입고해주셨다. 그리고 배고픈 나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해주셨다. 북극서점 두 사장님과 살리다 데 살리다의 두 부부 사장님과 미처 이름을 여쭙지 못한, 그림 그리시는 다른 두 작가님들과 함께 수요미식회에 나온 맛있는 중국집에 갔다.

요일가게에 잠시 짐을 맡기고 걸었는데, 마치 시간여행 같은 여정이었다. 인천시민들은 다 한복만 입으시나 싶을 정도로 한복가게 가득한 시장골목을 거쳐 홍예문으로 가는 길에는 홍예서림도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홍예서림은 영향력을 입고한 인천의 첫 책방이고, 이제 북극서점에서도 여섯 번째 영향력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타임머신은 홍예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작돼서 엄청난 양의 짬뽕을 다 비우고 돌아오는 길에 본격화됐다.



과거에 정신이 빠져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이 들 때쯤 피로와 노곤함이 우리를 다시 현재로 데려다줬다.



이번 축제는, 인천 배다리의 헌책방거리를 밀어버리고 산업도로를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뜻을 전하기 위한 행사이기도 했다. 가 보면 안다. 헌책방거리가 왜 없어지면 안 되는지를. 우리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반대운동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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