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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Mar 04. 2018

오션스 시리즈와는 다른, 달라서 좋은 <로건 럭키>

스티븐 소더버그의 자기 비틀기

요즘 들어 부쩍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대한 자기검열이 늘었다. 그래 봐야 결국 이건 이래서 괜찮고 저건 저래서 괜찮고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내며 대부분 끝나지만, 가끔은 스스로도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부비트랩을 지고 사는 기분이다.


유쾌한 하이스트 무비, 그러니까 소위 강탈 혹은 절도 영화를 보고 난 후 리뷰를 써야지 하고 빈 페이지를 펼쳤을 때도 그랬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그 안에서 많은 미덕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훔치는 과정'에 대한 영화를 그저 재미있었다고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영화 <로건 럭키>에 대한 리뷰를 이렇게 시작하게 됐다.




로건 럭키는 하이스트 무비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오션스 일레븐>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다. 오션스 시리즈처럼 캐스팅도 몹시 화려하다. 채닝 테이텀, 아담 드라이버, 다니엘 크레이그, 케이티 홈즈, 힐러리 스웽크 등 요즘 고유명사를 자주 잊어버리고 다시 생각해내지 못하는 나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거나 잘 나가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로건 럭키는 지금껏 봐왔던 전형적인 하이스트 무비, 혹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시리즈와도 좀 달랐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모두 어딘가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아주 평범하다는 거다. 보통의 사람들은 저마다 단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션스 일레븐>이나 혹은 <범죄의 재구성> 같은 영화를 떠올려 보면 한탕을 앞둔 주인공들은 항상 자기가 아는 최고들만 끌어모은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특정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들이 모이는 데서 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로건 럭키에서는 가장 먼저 이 한탕을 기획한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이나 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 멜리 로건(라일리 코프) 모두 어떤 분야에서 최고인 인물이 아니고, 절도에 있어서는 더더욱 불안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들이다. 이 조합을 보완하기 위해 로건 형제가 끌어들이는 전문가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인데, 이 조 뱅은 나름 동네에서 알아주는 절도범일지는 몰라도 다시 한번 어딘가 모자란 두 동생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일단 오합지졸을 만들어놓고 시작한다.



등장인물 구성의 전형성을 또 한 번 벗어나는 지점은, 미모도 최고고 실력도 최고이며 과거에 누군가와 애정관계에 있었던 여성이 조연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절도에 여동생 멜리가 가담하긴 한다. 멜리 역시 여느 영화에서처럼 늘씬한 몸과 화려한 미모를 자랑한다는 점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소비되는 방식 그 자체가 그다지 다르지 않았지만 적어도 역할 만큼은 좀 달랐다고 본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애인으로 등장하지 않았고 섹스어필해서 위기를 벗어난다거나 혹은 역으로 특유의 여성성(?) 때문에 조직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없었다. 멜리는 속도광이라는 그녀의 특기를 유감 없이 발휘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말끔하게 처리한다. 여성 캐릭터가 의미 없이 소비되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껏 수많은 하이스트 무비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점이다.


반전을 주는 방식 또한 새로웠다. 기존에 많이 봐왔던 건 이거다. 돈을 이렇게 저렇게 나누기로 한다. 하지만 그중 누군가가 배신을 한다. 워낙 등장인물이 많은 것이 최근의 유행이었던 지라, 누군가 돈 때문에 배신을 하긴 할 건데 그게 누구이며, 어떤 식이 될 것이냐가 대부분의 반전 요소였다면 <로건 럭키>는 오히려 그러한 지점을 뒤집는 데서 반전을 시도한다. 초반에 조 뱅의 남동생들이 절도를 모의하면서도 모럴 따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럴이 합리적으로 실현(?)되는 과정들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기타 소소한 유머 코드들, 쓸데없이 사소하고 소소한 잡담들, 이런 연기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낸 배우들의 연기, 하이스트 무비 치고는 꽤나 느릿하고 삐걱대는 전개, 적절한 음악 등도 좋았다. '로건 럭키'라는 제목 또한 로건이라는 성을 가진 삼 남매 중 둘째인 클라이드 로건이 천착하는 로건가의 징크스를 유쾌하게 뒤집어가는 과정을 잘 드러내는 영리한 작명이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했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래서? 결론이 뭔가, 비도덕적인 소재는 영화나 소설 등의 오락거리로 혹은 이야기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건가, 그걸 즐겨서는 안 되는 건가 묻는다면 솔직히 뭐라고 답해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소재를 이용해서 이야기나 인물을 다루는 방식 그 자체가 흥미롭거나 유의미할 때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즐겨도 되지 않나 하고, 여전히 스스로 핑계를 만들고 일단 끝내려고 한다. 


이 분야의 대가(?)인 스티븐 소더버그는 자신이 지금껏 반복해왔던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션스 시리즈를 기대했던 사람들과 그 이상을 기대하는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어중간한, 그래서 실망스러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점까지도 감수한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본(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하이스트 무비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로 당분간 <로건 럭키>를 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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