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날, 잔디지붕집 글라움베르(Glaumbær)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30

by Mihyang Eun

9박 11일 동안의 아이슬란드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고, 이제 여덟 번째 날이 시작됐다.


지난 주말,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한 친구와 함께 산책 삼아 김광석 거리엘 갔었다. 김광석 거리에는 병가로 쉬던 지난 3월 초 평일 낮에 가본 게 전부였기 때문에 거리 입구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넓지 않은 골목을 관광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난 3월에 갔을 땐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던 가게들이 성업 중이었다. 대부분은 군것질거리와 추억의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김광석 거리 중간쯤에 있던 야외극장 객석에 앉아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왔다.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내가 요의를 느끼기 전까지 한참 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12월의 것이라 믿기 어려운 그 따뜻한 햇볕이 기분 좋아서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쯤에 우리 집이 있으면 평일 낮에(그렇다, 나는 백수다) 여기 자주 산책 나올 텐데. 여기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막상 여기 살면 안 올 걸." 하고 대답했다. 원래 무뚝뚝한 친구였지만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말투에 잠시 머쓱했는데, 실제로 그 친구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사람들은 자주 보는 풍경에 늘 새로운 감동을 느끼기 어려우니까.


겨우 열흘 정도의 여행의 8일째 날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쩌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모든 풍경에 매료되어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일은 굉장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먼저 마음속으로 감동을 느낀 후, 그것을 감탄사로 표현해내는 모든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이슬란드 같은 곳이라도, 아무리 동서남북이 모두 새로운 놀라움의 연속이라도, 여행을 일주일 정도 하고 나면 8일째 즈음부터는 조금 덜 자세히 보게 되고, 조금 덜 감동하게 되고, 혹시라도 감동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속으로 삼키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물론 우리의 몸도 그간의 관찰과 감탄과 고된 일정 때문에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 강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반응 역시 없거나 약해지는데 여덟 번째 날부터는 큰 감흥 없이 관광객 모드로 특정 장소를 찍고 오는 여정도 생겼고, 차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밖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 모두 놔두고.


2년도 더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것이라, 포스팅마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이라는 표현을 한 번씩은 썼던 것 같은데, 역시나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들른 글라움베르(Glaumbaer)도 우리가 가는 길에 있으니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갔던 곳인 것 같다.


바이킹들의 전통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했고, 남의 집 구경이야 언제나 본전은 찾을 수 있는 재미거리이므로.

glaumbaer, iceland, 201309


사진에 보이는 언덕 위의 저 집이 바로 글라움베르, 잔디지붕집이다. 사실 여행 다녀온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기 보이는 지붕이 모두 별개의 집이 아니라 내부 공간이 하나로 이어진 하나의 집이라고 한다.


내가 저곳에 가서 그 사실을 모르고 돌아온 것은 물론 대단한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하필 우리가 갔던 날 저곳이 휴관하는 날이었던 탓도 있다.


glaumbaer, iceland, 201309

집 앞 언덕에 버섯이 피어 있다.


glaumbaer, iceland, 201309

전통가옥 부근에 있던 일반주택. 바닥에 고인 물에 지붕이 반영된 모습이 예뻐서 찍었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이런 사진들이 꽤 많은데, 나는 이런 사진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사소하긴 하지만 여행을 통해, 혹은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 하나다.


물에 비친 사물들의 모습은 거의 완전한 재현인 동시에 물이라는 매개를 거친 좀 더 유연한 해석을 반영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과 반영된 모습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은, 볼 때마다 항상 감동을 주는 것 같다.

glaumbaer, iceland, 201309

하나로 이어진 잔디지붕집의 모습. 지붕이 저렇게 잔디로 덮여 있으면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엔 덜 춥다고 한다.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glaumbaer, iceland, 201309

이 사진은 이제 보니 내가 비크(Vik)에서 묵었던 가르다콧(Gardakot) 해변 산책 때 찍었던 사진과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사람 참 안 변한다 싶다.


이렇게 낮게 사진을 찍은 이유는 내가 밟고 선 잔디들을 좀 더 가까이, 좀 더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glaumbaer, iceland, 201309


내부 공간을 둘러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린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했다. 이 동네에서도 만년설로 뒤덮인 오래된 산언저리들이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창으로라도 안을 들여다보았다.

glaumbaer, iceland, 201309 by anne
glaumbaer, iceland, 201309 by river


잠깐 글라움베르와 주변을 둘러본 후 우린 다시 길을 나섰다.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무지개가 떴다.

on the road, 201309


구름 아래쪽으로 설산이 보인다.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글라움베르에서 스티키숄무르 등대로 가는 길에 양치기 무리를 만났다.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의 도로에선 차보다 사람보다 양이 우선이다.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다시 용암의 흔적이 가득한 땅을 지났다.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on the road,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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