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33
아이슬란드 여행의 아홉 번째 날이자,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날에 처음으로 간 곳은 아이슬란드 남서쪽에 위치한 드리트빅(Dritvík)과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검은 모래의 해변 듀팔론산두르(Djúpalónssandur)였다.
지나간 여행의 한 장소, 한 장소를 돌아보는 것임에도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 그저 아쉬운 이 여행, 2년 3개월이나 지난 여행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모든 여행 포스트에 들어간 제목처럼 "꽃보다 청춘"의 아이슬란드행 영향이 컸는데, 첫 방송 전에 모두 끝내고자 하는 바람이 위태위태하게 됐다. 첫 방송은 바로 오늘, 1월 1일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1월 1일 새벽 1시이니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많이 알려지게 되는 걸 싫어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개는 이러는 이유가 '남들이 잘 모르는 걸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개성과 우월함을 확인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유명해지는 건 싫어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지면 그 작가가 더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보장받을 수 있고,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더 오래 읽을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미 만들어진 좋은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일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인디밴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건 좀 싫었다. 글과 달리 음악이라는 건, 첫 번째로, 음악이 연주되는 그 공간에서 글보다는 좀 더 직관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현장에서 반응과 교감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기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할 만한,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할 만한 음악으로 그 특성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로는 어차피 자주 만나 소통할 가능성이 적은 작가들과는 달리 밴드의 경우는 유명해질수록 그 무대를 가까이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무대가 커질수록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워진다) 본능적으로 그들이 알려지는 걸,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조건 즐겁게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애초에 좋아했던 어떤 특징이 변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물론, 많은 예술가들이 대체로 변화를 지향하기는 하므로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처음과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제일 싫은 일은 특정 장소가 알려지는 것이었다. 많이 알려진 곳은 많은 사람이 찾을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것은 곧 애초에 내가 그곳을 좋아했던 이유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가 더 생겨도 더 생기고, 뭐가 달라져도 달라진다.
2013년 9월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은 2015년 9월에도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다. 전해 들으니, 이미 우리가 함께 갔던 2년 전에 비해 사람이 많아졌고, 유명 관광지로 꼽히는 장소들에는 중국 관광객들을 실은 대형버스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여행하는 방식이 다르고 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에 소수가 여행하는 일이 두려울 수 있기 때문에 관광버스로 떠나는 단체 여행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체버스를 타고 가느냐, 마음 맞는 몇이 함께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내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죽이 척척 맞는 둘이 여행을 가더라도 가고 싶은 곳이 다르고 쉬고 싶은 때가 다른데, 단체로 움직이게 되면 전적으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런 빡빡한 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선 봐야 할 것만 얼른 보고 버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가이드가 있어서 여행하는 곳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겠지만, 그것 외엔 더 보지 못하거나 더 느낄 여유가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어떤 장소든 트래픽이 몰리면 그 장소를 제대로 여행하기가 힘들다.
단체 여행이 아닐지라도, 너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찾아 붐비는 곳에서는 사람에 치이는 것 자체에 에너지를 많이 쏟아서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기회를 잃기도 한다.
그래서, 특히나 대자연 속에서 콩알 만한 육신으로 돌아다니는 체험을 통해 보고 느끼는 것의 비중이 큰 아이슬란드 같은 곳일수록, 대중매체를 통해서 노출되는 일이 싫은 거다. 안타까운 거다. 조금씩 알려지고 그래서 조금씩 더 여행자가 늘어나는 일과, 특정 방송을 통해서 단번에 알려지고 그래서 폭발적으로 여행자가 늘어나는 일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것들로,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여행 이야기의 정리를 모두 끝내겠다는 나의 이상한 마음가짐이 모두 설명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날의 여행 이야기를 일단 시작은 했다.
드리트빅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어선 선착장이었다고 한다. 그래 봐야 최대 60대의 어선이 정박했다고 하지만 용암지대에 이만한 규모의 선착장이 유지되기는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Read more: http://www.lonelyplanet.com/iceland/dritvik-djupalon#ixzz3vpXq125Y
드리트빅의 입구.
이 해안에는 오래전 난파된 배의 잔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 해안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어선선착장이었던 만큼, 이곳에는 어부의 자질 중 하나인 힘(?)을 시험하기 위한 돌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과 달리 바닥에 놓인 돌은 4개가 아니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려고 비슷한 크기의 돌을 더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돌의 무게는 가장 가벼운 것이 23kg, 가장 무거운 것이 154kg으로 당시 우리는 제일 가벼운 돌조차 들지 못했다. 현재 크로스핏을 4개월째 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면 23kg 정도는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용암바위가 있었는데,
구멍을 통해 들여다본모습 또한 밖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용암 바위나 검은 모래 해변, 멀리 보이는 설산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몇 번씩 본 것들이었다. 하지만 기원이 같다고 현재의 모습까지 모두 같진 않다. 게다가 이제 한동안 더는 이런 풍광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이곳에 꽤 오래 잡아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