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34
슈내펠스네스(Snæfellsnes)는 서아이슬란드 보르가르표르두르(Borgarfjörður) 지역에 위치한 반도로, '미니 아이슬란드'로 불린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하면 떠오르는 슈내펠스요쿨 화산(Snæfellsjökullvolcano)을 비롯해 아이슬란드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형들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
보르가르표르두르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슈내펠스요쿨 화산은 높이 1446m로 산꼭대기에는 빙하가 있고, 맑은 날에는 120km 거리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레이캬비크에서도 이 산을 볼 수 있다.
또 이 산은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 <지구 속 여행(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에 등장해 더욱 유명하다. 열림원에서 나온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물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덴브로크 교수는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가 남긴 16세기 고문서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다. 룬 문자로 된 이 문서에는 아이슬란드의 사화산 분화구에서 지구의 중심까지 길이 뚫려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교수는 조카 악셀과 도중에 만난 길 안내인 한스를 데리고 지구 속으로 모험 여행을 떠난다.
지구의 중심까지 길이 뚫려 있다는 사화산이 바로 슈내펠스요쿨 화산이라고 한다.
아이슬란드 가기 전에 조금만 덜 바빴더라면 추리소설 세 권만 읽는 게 아니라 이 소설까지 함께 읽어보고 갔을 텐데. 그 점은 좀 아쉽지만 어쩌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은 덕분에, 그 지구의 중심으로 가는 입구를 찾아보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품지 않고 무사히 그곳에서 돌아올 수 있었을 지도.
맑은 날 120km 거리에서도 보인다는 슈내펠스요쿨 화산인 만큼 아홉 번째 날 오전부터 멀리서 계속 보아왔던 저 사화산, 꼭대기가 빙하로 된 그 산을 뒤로 하고 좀 더 걸어들어가면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비록 사화산이지만 화산 주변인 만큼 모래가 역시 검다.
뭔가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나,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서였나, 잠깐 들렀던 슈내펠스네스의 한 게스트 하우스 내부 모습.
한쪽 벽에는 책이 잔뜩 꽂혀 있고,
한쪽 벽에는 오로라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어쨌든 화장실까지 해결하고 나와 돌로 된 관문을 거쳐 바다로 갔다.
아이슬란드 아니랄까 봐 이 돌무덤 저편으로도 만년설로 뒤덮인 산이 보이고,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넓은 바다가 나왔다.
레이니스피아라처럼 용암이 녹고 바위가 깎여 책처럼 바닷물에 꽂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이 어찌해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위에 서서 파도가 바위에 드나들며 부딪치는 걸 조금만 보고 있어도 금세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들이치고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북극해의 바닷물이 계속해서 주상절리를 빚어낸다.
나는 어쩐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저 산에 굉장히 마음을 빼앗겼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각자가 찍은 사진을 모여서 함께 보는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각자 찍은 사진들을 서로 모두 공유했는데, 나중에 직접 찍은 사진으로 러그를 만들 일이 있을 때 엘이 찍어준 이 사진을 택했다.
그래서 요즘 엄마와 내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밟고 서는 땅이 바로 슈내펠스네스와 그곳에 서 있는 작은 나다. 여행에 옷을 많이 가져가지 않았고 외투는 오직 하나였는데, 짙은 카키색 점퍼를 입은 덕분에 거의 보호색 수준이다.
먼저 차로 간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열심히 달려 이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