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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열한번째날, 다시 되돌아오는 이틀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40

by Mihyang Eun

열흘 동안의 아이슬란드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일이 남았다.


아이슬란드에 갈 때는 헬싱키에서 한 번 환승했고, 시차 덕분에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20분에 출발해 14시간 반이 걸려서 레이캬비크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겨우 오후 4시였다.


가면서 그렇게 시간을 얻었으니,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그 시간을 다시 반납해야 했다.


오슬로에서 한 번, 헬싱키에서 또 한 번 환승했는데, 레이캬비크공항에서 오전 7시 50분에 출발해 18시간 정도 걸려 인천공항에 도착한 건 다음 날 오전 8시 20분이었으니까.

아침 비행기여서 숙소에서 새벽같이 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돌아가기 싫다고 징징댔다. 똑같은 'Departures'라도 여행을 떠날 때의 '출발'과 돌아갈 때의 '출발'은 다르다.


레이캬비크 케플라비크공항에 붙어 있던, 북유럽 분위기 물씬 풍기는 광고판.


여행을 시작할 때 사소한 풍경도 모두 특별하게 보이는 것처럼, 돌아올 땐 모든 게 다 아깝고 아쉽다.


아이슬란드에어에서 주는 커피와 그 컵에 쓰인 이야기들도 특별하다. 탑승객들에게 커피를 주면서, 1,000년에 콜럼버스보다도 더 먼저 미국을 탐험했던 라이푸르 에이릭손(Leifur Eiriksson)조차도 여행 중 커피를 공짜로 마시지는 못했다는 문장이 적힌 티슈를 나눠주다니.


에이릭손의 별명이 'The Lucky'라는데, 아이슬란드에어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사람은 별명이 '행운아'인 사람도 공짜로 마시지 못한 그 커피를 공짜로 마시는 셈이다.


커피를 담아주는 컵은 '스트로쿠르는 천연온천에서 나온 증기열'이라는 문장을 담고 있다. 그 종이컵에 무엇을 담아마시든, 들뜬 여행자가 "나는 지금 온천에서 끓어 올라온 증기열을 마시고 있어!"라고 말하며 여행의 설렘과 흥분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돌아오는 길에 마시는 그 증기는, 마음에 서리를 끼게 한다는 것이 다르다.


비록 오슬로 땅을 밟아보지는 못했지만, 공항에서나마 노르웨이를 느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두 번째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까지 공항 이곳저곳을 열심으로 구경했다.


내가 본 북유럽의 책표지들은 전반적으로 어딘가 촌스러운 맛이 있는 게 매력이다.


사랑스러운 몰스킨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다시 돌아온 핀란드 헬싱키공항.


사람은 역시 아는 만큼 본다고, 저 빽빽한 나무들을 보면서도 자꾸 머릿속엔 '자일리톨'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돌아가는 길이 더 멀고 피곤해서라고 위로했다.


언제 봐도 감동적인 상공. '구름 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큰 의미 없는 일이지만, 눈으로도 가닿지 못하는 곳이 내 육신이 있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멀리서, 아래서만 보던 것의 위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는 건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우리가 탄 비행기의 항로.


핀에어를 타고 오갈 때 핀에어에서 골라준 북유럽 음반들을 듣고 또 들었다. 그중 마음에 들었던 곡들은 이렇게 기록해두고, 지금까지 두고두고 듣고 있다. 그 중에는 음원을 찾지 못한 것도 꽤 되지만.



이제 정말 돌아왔구나, 돌아온 지 2년 하고도 100일(신기하게도) 정도 됐구나.


나는 점점 더 그 여행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조금씩 더 다음 여행과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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