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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zarirang Nov 16. 2022

위스키 시음회

딸~~ 위스키는 아니잖아?

벌써 지난해의 일이다.

아는 지인분의 저녁 초대로 두 딸들과 함께 갔다.

둘째 딸 때문에 인연이 되었던 분들이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막둥이와 우리까지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분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남편인 S와 부인인 R은...

벌써 결혼을 한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정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알콩달콩 사시는 분들이다.

스믈이 갓 넘은 젊은 시절 만나서 이제 칠십을 넘겼다고 하는데 내 나이도 잊은 채 그분들을 보면 푸근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남편인 S는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에서 이곳으로 이주를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멋진 스코틀랜드 민속악기인 백파이프를 잘 불고 팀까지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인 R은 화통한 성격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빨간색으로 염색을 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열정이 어찌나 차고 넘치는지 아직도 대외적인 활동을 끊임없이 한다고...

S는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영국 성공회 교회의 목사여서 아직까지도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가는 정 오는 정~

우리 부부는 S와 R, 이 노부부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시안으로 이민사회에 살면서, 딸들이 이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노부부의 은혜일 수도 있겠다 싶다.

늘 남편과 하는 이야기지만, "딸도 아니고... 손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먼~ 친척도 아닌데... 왜 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 딸들에게 각별하다.

덕분에 우리도 28년째 살고 있지만... 늘 낯설고 물설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비빌 언덕'처럼 의지할 때가 생긴듯하다.

어찌 되었든, 노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점심을 대접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집에 초대를 받았다.

부인은 서빙하고 남편은 요리하고...

둘째네에 우리 차를 세워두고 막둥이 차로 갔다.

둘째네에서 산을 관통하는 내가 사는 곳 유일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노부부의 집이 나온다.

항구인 이 마을은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산을 타고 자리를 잡아서인지 마을로 들어서면서 바로 오르막길이었다.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둘째의 안내로 길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딱 봐도 어느 집인지 알 수 있었다.

"저기~ 집 앞에 알록달록 꽃들이 많은 저 집이지?" 할 정도로 이쁘게 꾸며진 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벨도 누르기 전에 R이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살짝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반겼다.

약간 우울증을 앓고 있어 30대 후반이지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등치가 산만한 아들이 남편과는 악수로 나와는 찐~한 포옹으로 첫인사를 나눴다.

R의 말로는 손님이 왔을 때.... 정말 친한 관계가 아니면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며 그의 행동이 의외라는 식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소박한 집안이었다.

언덕에 자리 잡은 3층으로 이루어진 집인데... 도로와 연결된 현관문을 열면 2층 거실이고... 올라가면 3층 침실... 내려가면 주방과 식탁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 텃밭과 가든이 나오는 구조였다.


약간은 소란스러운 첫인사를 마치고 주방으로 내려가자... 130kg은 될 듯싶은 S가 숨을 헐떡이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S는 우리의 인기척을 느끼곤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려 역시 남편과는 악수를 나와 딸들과는 쪽!!! 소리만 나는 볼 뽀뽀를 하며 꼭 안아주었다.

참 포근했다. 그냥~~ 고향의 할아버지 아니.... 아빠의 품처럼...

먼저 와 있던 S가 목회를 하던 시절부터 오른팔?이었다는 H와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처음으로 시푸드 차우더가 나왔다.

와우~ 정말 입에 착 붙는 맛이었다.

먹느라고 사진을 못 찍은 게 참 아쉽지만... 나는 두 그릇을 먹었다. 체면이고 뭐고 맛있었으니까....

그리고 메인으로 양고기 구이... 양고기의 특유한 냄새까지 사라진 쫀득한 맛~

처음으로 맛본 콤부차는 별로였지만, 요즘 건강에 좋다고 해서 토요장터에서 사다가 드신다며 반 컵을 따라 주셔서 음~~ 하며 마셨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 텃밭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하하 호호하며...

내가 만들어간 마카롱으로 후식까지 먹으며 마무리가 되어가는 찰나!!!!


이제 슬슬~~

식탁을 모두 치우고... 여기저기 흩어져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즈음...

H가 사 온 위스키~ S가 모아두었던 위스키~ 두 딸이 사 가지고 간 위스키~가 빈 식탁을 채웠다.

참 각양각색의 위스키가 모였다.

위스키 병을 중심으로 S와 H 그리고 우리의 막둥이 셋째가 모였고... 멀찍이 남편이 구경꾼 신분이 되어 앉았고... 둘째와 R 그리고 나는 좀 멀찍이 소파에 앉아 우리끼리 소곤소곤하며 눈으로는 뭐하나 싶어 쳐다보며 귀까지 쫑긋거렸다.

셋은 블링블링한 위스키 잔을 앞에 두고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뭐라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조금씩 정말 딱 한 모금 정도를 잔에 따랐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그 위스키 상표에 대한 역사와 위스키에 대한 에피소드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란다. 그리곤 셋이서 짠~ 하며 국물 맛보듯이 마셨다.

그리고 서로 맛에 대해 평을 하더니 다음병을 손에 들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동안 서너 병의 위스키를 마신다기보다는 맛본다는 느낌으로 시음회를 마쳤다.

영어가 술술 들렸다면 나는 아마도 위스키 박사쯤 되지 않았을까?

이점은 참으로 아쉽다.

이런 거 라면 위스키도 괜쟎네!

두 딸에게 몇 달 전부터 시음회를 하자고 했단다.  

물론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둘째는 시큰둥~했고... 술을 좀 마신다는 막둥이는 콜~~ 을 외쳤다고.

우리 가족과 식사를 하기로 하고 뒤풀이로 오매불망 기다려온 위스키 시음회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70대의 두 할아버지와 손녀뻘되는 20대의 셋째 이렇게 셋이 모인 시음회는 참 조합도 이곳스러웠다.

수직이 아닌 수평 사회인 이곳 말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공통분모만 같으면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렇다고 어른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수평이랍시고 손녀뻘 되는 아가씨에게 무례하게 굴지도 않고...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잘 이룬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렇게 시음회는 끝났다.

그 누구도 술에 취하지 않았고... 멀리서 지켜보는 남편에게 "같이 할래?" 한마디 권하곤 그냥 구경꾼으로 함께한 남편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술친구처럼 함께 했다.

물론 우리에게도 눈찟으로 "웰컴~"을 표했을 뿐 식탁이 아닌 소파에서 소곤소곤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선물까지 받아 들고...

굿바이~를 하는 시간이 됐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포근한 포옹으로 마무리했다.

우리가 간다고 하니 위층에 올라가 있던 아들까지 꿍꽝거리며 내려와 "바이~ 맘~" 하며 나를 앉아주었다.

그냥 좋았다.

할아버지 S는 본인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시푸드 차우더를 한통 싸주었다.

집에 가서 어머니랑 같이 먹으라고 하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차 안에서 "이런 거면 위스키도 괜찮네... 근데 몇 잔이나 마신 거야? 괜찮아?"하고 막둥이에게 물었다.

"애구~ 엄마... 그냥 진짜~ 몇 모금 마신 거야... 이곳에선 마시라고 권하지 않으니까... 그게 좋고... 여러 종류의 맛을 시음하는 거니까... 아주 조금씩만 맛본 거지...." 했다.

그 후로 또 한 번 모이자고 했는데... 더 이상 위스키 시음회는 하지 못했다.

아마도 올 크리스마스 나 연초에 다시금 만나 또 동그랗게 모여 앉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나도... 냄새만으로도 취한 느낌이었기에 자신은 없지만... 남편처럼 가까이 앉아 구경꾼이라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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