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07)
효리 언니를 좋아하지만 도민 입장에서 때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다. <효리네 민박>에서 한 번 휩쓸고(?) 지나간 곳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돼 버려 더 이상 한적한 아름다움을 즐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왜, 누구나 그런 마음 있지 않나. 언제까지나 나만 알고 있고 싶은 아지트 같은 카페가 어느 순간 유명해지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좀 서운한 마음도 드는 그런. 제주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북적북적한 관광지가 되어 버리는 건 어쩐지 좀 서운한 일이다.
백약이오름도 <효리네 민박>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오름 중 하나이고, 특히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과 오름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워 최근엔 웨딩사진의 성지이기도 해 항상 차들이 북적인다. 실제로 백약이오름 주차장을 기준으로 도로 건너편엔 문석이오름과 동거문이오름이 위치하고 있지만 그쪽으로 향하는 이는 거의 찾기 힘들 정도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관광객이 많이 가는 복잡한 곳에 굳이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명한 곳은 분명 유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요즘 같은 청명한 가을날이라면 좀 복잡하면 어떤가 싶게 마음이 좀 너그러워지기도 하고 말이다. 주차를 하고 오름을 올려다보니 과연 계단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팀이 서너 팀은 보인다. 아휴, 작게 한숨을 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약이오름은 정상까지 계단이 놓여 있어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오르면 힘들 것 없이 누구나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보이는 첫 번째 언덕에 오른다. 첫 번째 언덕이라기보다는 아, 저기가 오름의 정상이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완만한 편이지만 고개 너머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정상에 섰을 때의 모습이 매우 궁금해지는데, 도착하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주변의 오름들과 그 사이로 펼쳐지는 밭들,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바다, 그리고 움푹 파인 분화구를 중심으로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는 나무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한참을 풍경을 감상하며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 사 들고 오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정상에서 왼쪽으로 길이 나 있어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본다. 자꾸만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다채로운 풍경이다.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뿐만 아니라 뒤에 남겨지는 광경도 그림과 같아 자꾸만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주변엔 아무도 없다. 입구에서 계단까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 북적이더니 오름을 둘러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기껏해야 첫 번째 언덕까지 보고 돌아서는 게 대부분인가 보다. 주변이 조용하니 풍경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작은 언덕 총 네 개를 넘으면 처음에 올라온 계단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이에 한라산부터 작은 오름들, 성산일출봉, 우도까지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담기 바쁠 정도로 쉼 없이 펼쳐진다.
찬찬히 걸으니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다. 다시 계단으로 돌아오니 아까 올라갈 때 있었던 촬영팀들은 모두 사라졌고 새로운 팀들이 가득하다. 역시 이번에도 다들 계단에서만 사진을 찍고 돌아가려나. 제주 여행이 관광지에만 집중되지 않고 오름과 같은 작은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객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기왕 이렇게 오셨으니 사진만 찍고 가지 마시고 진짜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게 조금만 더 올라가 보면 어때요? 훨씬 더 감동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