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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Nov 09. 2018

제주도민들의 은밀한 아지트 <목화휴게소>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14)


"아니, 어디 좀 새로운 데 없어? 관광지 말고, 응? 오름도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단 말이야. 좀 숨겨진 길이라던가, 숨겨진 맛집 같은 거 없냐고. 제주에 살고 있으니까 알고 있을 거 아냐. 좀 풀어봐 봐"

제주에 와 볼만큼 와본 지인의 투정 어린 협박이다. 아니, 나라고 별 수 있냐고. 심심해서 밖에 나가 봐도 결국 매번 가는 곳만 가는걸. 하지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 풍경이 매일 다르니 그게 또 재미라고 아무리 말해 봐야 먹혀들 리가 없다.


사실, 왜 없겠어. 숨겨진 좋은 곳 말이야. 유명하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한눈에 탁 트인 경치가 내려다 보인다던가, 고즈넉하게 한 없이 이어진 길 가득 억새가 피어있다던가, 커다란 바위를 조금만 내려가면 나타나는 나만의 비밀 해변 같은 곳. 그런데 왜 있잖아. 그런 곳은 우리만을 위해 계속 숨기고 싶은 마음.






목화휴게소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다만 해안도로변에 떡하니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숨겨져 있다기보다는 그 매력을 알아보는 이에게만 보이는 신기루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까울지도. 앞서 말했듯 목화휴게소는 성산~종달 해안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휴게다. 휴게소 맞은편 해안가에 빨랫줄을 길게 걸어놓고 준치를 말리는 풍경이 언제나 인상적이다.





휴게소 근처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털이 북슬북슬한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우리를 반긴다. 열열한 환대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반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걸 보니 어린 개는 아닌 모양이다. 준치를 한 마리 주문하고 솜씨 좋게 구워주시는 동안 고민할 것은 맥주냐, 막걸리냐 정도. 그 날의 운전자 한 사람만 눈물을 머금고 음료수 칸을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잘 구운 준치에 고추장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인 접시를 들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가 좋으니 널려있는 준치 뒤로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자주 보는 광경이지만 막상 해안도로에 멈춰서 보는 일은 드무니 새삼 풍경에 감탄을 하며 곱게 찢은 준치를 입에 넣었다. 한치보다는 얕은 맛이 덜하지만 씹는 맛이 있어 안주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어느새 개가 테이블 옆에 와 자리를 잡았다. 가만히 보니 털이 긴 발바리인 것 같은데 가위로 투박하게 털이 다듬어져 있다. 언제였더라. 유승호 '어린이'가 출연했던 <집으로>라는 영화에서 할머니가 가위로 슥슥 앞머리를 잘라 주시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마도 주인 할머니께서 '아이고 이 녀석, 털이 금방도 자라네'라고 중얼거리시며 미용해 주시지 않았을까. 사랑받고 있네, 개.





뉘엿뉘엿 해 질 무렵이 되어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질 때쯤이면 등판하는 구원투수. 맞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것. 이럴 땐 사발면에 물 하나 부어 줘야지. 바닷바람 맞으며 먹는 라면 맛을 육지 촌것들이 알라나 몰라. 그래도 입이 심심하면 '부루스타'에 구워 먹는 쫀드기 맛은 또 어떻고.





느긋하게 준치에 맥주를 홀짝이며 경치를 구경하는 동안,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동네 삼촌들이 - 제주에서는 손 웃어른을 성별과 무관하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 준치와 막걸리를 담은 검은 봉지를 사 들고 가시는 풍경을 섭섭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과연 핫 플레이스답네.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한 잔 걸치는 것도 좋지만, 술이 부담스러운 날이라면, 혹은 마음을 다잡고 싶은 그런 어떤 날이라면 따듯하고 달콤한 오백원짜리 믹스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 한없이 바다를 보는 것도 좋겠다. 누구 하나 이것만 주문하고 자리 차지하는 거냐고 눈치 주는 이도 없다. 이름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운 목화휴게소니까 말이다.



덧. 꽁꽁 숨겨둔 낮술 포인트 소문낸다고 여기저기서 혼날지도 모르겠다. 에이 왜 그래, 우리는 또 찾으면 되잖아. 아니, 아직 많잖아. 우리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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