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12)
여름 성수기가 끝나고 진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나도 민박집을 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주변 대부분의 자영업자들 - 대체로 숙박업, 요식업이다 - 은 백이면 백, 성수기보다 더 바쁜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 왜인가 하면, 바로 지인 방문 러시의 계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제주에 살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 친구, 지인 등 다양한 손님맞이가 끊이지 않기 마련인데 이것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시간을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문객들의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 도민인데 숨겨진 좋은 여행지, 맛집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바로 그 날이 찾아왔다. 2018 추계 부모님 방문 주간.
제주 입도 이후 세 번째 부모님 방문이다. 첫 번째는 '아하하, 저도 잘 몰라요'로 일관했다면, 두 번째는 그 간의 지식을 총동원해 간신히 선방하고 나니 세 번째만에 밑천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 본 사람은 알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비싸면 꽝이요, 아무리 싸도 맛이 없으면 그것 또한 꽝인 것이다. 그런 와중 이번 방문 주간을 총평하시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음식으로 바로 <성안식당>을 꼽으셨으니, 이 곳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사실 <성안식당>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있는 성산에 위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구불구불 골목길을 들어가면서도 '여기가 맞아?'하는 의심이 끊이지 않을 즈음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종료되면 '여기?'하는 생각을 잠시쯤 하게 되는 외관을 가진 그런 곳.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제대로 된 리뷰도 찾기 힘들고 실로 사장님조차도 관광객 티가 나는 우리 일행을 보고 조금은 신기한 듯이 여기는 눈치였으니 말 다 했다만, 이미 수십 년간 도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진정한 숨은 고수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 곳의 메인 메뉴는 바로 '돼지 족탕'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선뜻 내키는 음식이 아닐 수 있겠는데 뭐, 말 그대로 돼지 족발을 끓인 탕이다. 유난한 제주도의 돼지 사랑은 돼지의 갖은 부위를 온갖 방법으로 조리하다 못해 발까지 탕으로 끓여내고 말았고 이를 제주에서는 원래 '아강발 국'이라고 부른다. 도시에서 흔히 '미니족발'이라고 불리는 부위를 제주말로 '아강발'이라고 하니 이제 슬슬 어떤 음식인지 상상이 될 듯.
주문을 하면 팔팔 끓는 뚝배기에 들깨가루가 듬뿍 올려져 나오는데 그 밑을 들추면 살짝 숨이 죽은 미나리와 깻잎 등의 향신채소, 대추와 인삼 등 보양 재료, 그리고 바로 아강발이 들어있다. 국물은 돼지국밥과 같이 돼지를 푹 우려낸 육수이지만 족발이 들어간 만큼 콜라겐이 뜨거운 국물에 슬쩍 녹아들어 입안을 눅진하게 채우는데 한참을 먹다 보면 입술이 쩝쩝 들러붙는 느낌이 올라온다. 푹 고아 한껏 부드러워진 족발도 섭섭지 않게 들어 있는데 - 너무 뜨거우니 - 살짝 식혔다가 새우젓에 콕 찍어 먹으면 정말 말 그대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아닐 수 없는 데다 누린내나 잡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우족탕이나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든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맛.
그리고 숨겨진 킬링 포인트는 바로 숙주나물이다. 숙주나물을 조리할 땐 숙주를 데쳐 내 물기를 꼭 짜내고 양념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성안식당은 숙주의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을 정도로 살짝 데친 후 물기를 그대로 받쳐 제거해 양념을 하는 방식으로 조리 해 숙주의 식감과 고소한 양념의 조화가 아주 신선한데,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숙주나물을 한 젓가락 가득 집어 탕 안에 넣어 족발, 그리고 국물과 같이 먹으면 그 조화가 아주 좋다. 그 외에 김치와 양파, 고추, 된장 등 단출한 밥상이지만 탕 한 그릇을 해치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돼지 족탕도 알려지지 않은 제주도 고유의 향토음식이기도 하고 가격도 맛도 두루두루 만족시켜줄 수 있는 긴 시간 검증된 맛집이니 여행길에 한 번쯤 도전해 보아도 좋은 메뉴로 슬쩍 추천을 더해 본다. 아참, 나만 그런가 모르겠는데 라벨이 나란히 맞추어 정렬되어 있는 소주병이라던가 반들반들 끈끈함 없이 잘 닦여진 테이블을 보면 맛도 맛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드는 거. 뭐,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