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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Nov 30. 2018

클림트, 그 화려함의 절정 <빛의 벙커>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18)


시골 생활의 쇼핑 핫 플레이스는 백화점도, 드러그스토어도 아닌 철물점과 다이소다. 이 날도 여느 때처럼 성산 다이소에서 덜렁덜렁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돌아 나오는 참에 못 보던 플래카드가 나풀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맙소사! '클림트'라는 단어를 제주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전시회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클림트보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빛의 벙커>라는 컨셉이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AMIEX라는 프로젝트는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하여 영상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미디어 아트 전시를 운영하는 것으로 프랑스 외 처음으로 우리나라 제주도 성산에서 진행된다고 하는데, 과거 한국통신의 기간 통신시설로 활용되던 - 민간에 알려지지 않은 - 비밀 벙커가 전시공간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신나는 프로젝트 아닌가. 내가 전시 기획자라면 저런 공간을 발견해 낸 순간부터 설레서 잠도 안 왔을 것 같은데.






'비밀벙커'였던 곳인 만큼 수상하고도 좁은 오솔길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가 위치한 전시장의 입구는 과연 아직도 나무와 풀로 덮여 위장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와, 이거 정말 흥미롭네.






전시는 총 40분짜리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상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추어 입장을 하면 좋겠지만 중간부터 본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커다란 음악 사운드가 압도적인 데다 벽과 바닥, 온 사방이 빛으로 가득 차 일순간에 현실감이 사라져 버린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AMIEX는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 클림트- 의 다양한 작품들을 미디어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은은한 클래식이 잔잔하게 흐르고 관람객들이 조용조용 조심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과 영상 안에 관람객이 온전히 '포함되어 버리는' 방식에 가깝다. 벽과 바닥, 기둥이 모두 영상을 비추는 스크린으로 활용되는데 긴 벽, 구부러진 모퉁이, 그리고 사이사이의 기둥에 모두 다른 영상이 영사되고 있어 티브이나 극장의 스크린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화면만 보아오던 시야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현란하고 또한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움이라는 것이 대단히 정교하게 계산된 영상의 구성이어서 한눈에 감당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어느 공간에서 어떤 화면을 보았는지에 따라 보는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보아도 이 전시를 다 보았다고 말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티켓을 확인하며 영상과 사진 촬영은 마음껏 해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의 의아함이 한순간에 이해가 된다. 단순한 사진과 한 부분의 영상을 본 것만으로는 전시를 온전히 즐겼다기 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빛을 쏘는 방식의 전시에서 화려한 클림트의 그림들은 이보다 적합할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가 암전 된 화면에서 황금빛으로 천천히 가지를 뻗어나가기 시작하면 아, 곧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겠구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데 곧이어 가장 유명한 작품인 <유디트>와 <키스>가 영상에 나타나는 순간의 화려함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내게 가장 압도적이고 황홀했던 장면은 그의 다양한 풍경화들이 온통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강렬하면서도 한편으로 차분한 느낌이 드는 색감과 섬세한 붓터치가 그대로 느껴져 마치 그가 바라보고 그렸던 그 풍경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총 40분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반에 몰려오는 영상에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몰라하며 어디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했던 시간이 많았던지라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아 전시 기간 중 다시 한번 정도는 꼭 찾아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전시다운 전시가 고픈 제주도민에게도, 또 프랑스 외 유일무이하게 시도된 전시이니만큼 관광객에게도 추천할만하다 하겠다.



덧1. 클림트가 메인(30분)이지만 훈데르트바서의 작품(10분)도 같이 진행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강렬하고도 다소 기괴한 느낌의 영상도 매우 매력적이다.


덧2. 관람료가 좀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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