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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제주 Dec 04. 2018

언제까지 크런치만 사고 있을 거야 <신효 귤향과즐>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주는 구석구석 제주 이야기 (19)


오랜만에 막내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거, 신효 맞지? 신효 귤향 과즐, 맞지? 그게 맛있는데,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헷갈리네"

맙소사. 여보세요, 다음에 다짜고짜 과즐 브랜드를 물으시다니. 네, 맞아요. 대단히 중요한 문제지요. 암요.


귤향과즐과의 운명적인 만남 또한 2014년도 J와의 제주도 여행 시절로 돌아간다. 하나로마트 과자코너에서 얼쩡거리던 J가 한껏 신이 나서는 이게 엄청 맛있다고 커다란 한과 봉지를 안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여행 일정 내내 밥풀 튀밥을 여기저기 흘려가며 그렇게도 '그것'을 먹어대고는 기념품으로 양 손 가득 집으로 들고 돌아간 그 과즐에 엄마를 포함한 이모들까지도 중독(!)되고 말았으니 말 다했다.






과줄(과즐/과질)이란 얇고 넓은 밀가루 반죽을 튀겨낸 후 쌀 튀밥 가루를 붙여 낸 한과를 일컫는 말로 귤향과즐은 달지 않지만 은은하게 달콤하고 은근하게 구수한 풍미가 있어 질리지 않고 한도 끝도 없이 손이 가는 말 그대로 중독성 있는 맛이 특징이다. 그런데 귤향 과즐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킁킁 냄새를 맡아보아도 귤향이 막 느껴지고 그러지는 않는데. 궁금해 미치겠는 나는 결국 귤향과즐 마을로 찾아가게 되는데...





'귤향 과즐 마을에서 일어나는 신나고 흥미진진한 모험!' 따위 있을 리가 없다만, 날씨가 좋고 거리 곳곳에 귤밭이 펼쳐지는 풍경에 괜히 흥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신효 귤향과즐은 기후가 온화해 귤 농사가 잘 되고 과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 서귀포 효돈의 신효 마을에서 마을 사업으로 생산되는 제품으로 서귀포 감귤박물관 앞에 과즐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과연 감귤박물관 가는 길인 만큼 도로 양쪽의 가로수로 잘 자란 하귤나무가 줄지어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있는 데다 그 뒤로는 끝없이 귤밭이 보이니 감귤의 고장에 들어선 것이 실감 난다.





사전에 문의하니 별도의 예약 없이 언제든 찾아가면 체험이 가능한데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향이 가득하고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연신 과자를 먹어가며 체험하는 신나는 공간을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막상 그곳은 조용하고 휑뎅그레하기 그지없다.


"저어, 만들기 체험하러 왔는데요"


과즐 생산에 관련된 영상을 보며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주시는 것을 기다리니 쌀 튀밥과 시럽, 그리고 밀가루 과자가 나온다. 과자에 시럽을 바르고 쌀 튀밥을 묻히는 간단한 내용의 체험이다. 둘이 번갈아 가며 시럽을 바라는 것과 쌀 튀밥 묻히는 것을 하며 이것저것 과즐에 대해 여쭤보았다.





비슷한 과즐이 많은데 신효 과즐이 더 맛있는 이유에 대해 밀가루 과자에 물 대신 귤즙으로만 반죽으로 하고 시럽에도 귤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신다. 말씀은 이렇게 수줍고 간단하게 해 주시지만 사실 이게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다. 시럽에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딱딱하게 굳어 식감이 나빠지고 조청이 많아지면 꾸덕꾸덕 잘 굳어지지 않아 그 절묘한 배합 비율을 찾는 것이 첫 번째 비법일 것이며, 밀가루 반죽은 반죽을 얇게 밀고 접는 과정을 반복해야 튀겼을 때 패스츄리처럼 층이 있는 과자를 만들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 반죽을 너무 많이 치대면 과자가 딱딱해져 버려 이것 또한 중요한 노하우라 할 수 있겠으니 지금의 레시피를 정착시키고 표준화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체험 뭐, 별거 없네 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구석구석 시럽을 바르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시럽이 굳어갈수록 얇게 바르기가 어려워 두껍게 뭉쳐버린 시럽 덕분에 막상 집에 가져와 맛을 보니 사 먹느니만 못한 맛이 되고 말았다. 그래, 사 먹어야지.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따뜻한 차에 곁들여 냠냠 맛있게도 먹어치웠다지.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만큼 중독성 있는 맛으로 - 굳이 신효까지 가지 않아도 - 제주에서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이지만 제주섬 밖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인 만큼 남들 다 사는 흔한 기념품보다는 귤향과즐을 기념품 삼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정말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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