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는 시간. 일을 마치고 한숨 돌린 후 영종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산뜻한 바람이 이따금 나를 건드렸다.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 이왕이면 그런 날에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영종역에서 지도를 켜고 얕은 오르막길을 짧게 오르니, 그곳만을 위한 길 그 끝에 자리한 ‘인천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해가 긴 계절이라 그때까지도 훤히 밝았지만 아무도 없던 적막함에 약간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건 내가 겁이 심각하게 많아서이긴 하다.
교문을 통과하여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잔디가 깔린 작은 운동장이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먼지 풀풀 나는 모래 운동장도 아니고 인조 잔디로 깔끔하게 꾸며놓은 운동장도 아닌, 듬성듬성 파인 부분이 있는 천연 잔디 초등학교 운동장은 처음 보았다. 눈으로 보기엔 너무나 포근해 보이고 정감 어린 운동장이었지만 실제로 저기서 뛰어놀다가 유행성출혈열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메마른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각박한 생각이 드는 내 머리를 좌우로 휘저으며 학교 건물 앞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건축물에 관해서는 식견이 전혀 없는 탓에 이 학교의 건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런 지식이 중요한 건 아니다. 한눈에 봐도 이 건물은 예뻤고 견고함이 느껴졌다. 낡아서 보기 싫은 오래됨이 아니라 두고두고 보고 싶고 예스러움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오래됨이었다.
단단하게 쌓여있는 단층 짜리 석조 건물 안쪽으로는 아이들을 다 하교시킨 뒤 오늘을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선생님도 보였다.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구경한다고는 했는데 약간은 신경이 쓰이진 않았을까 지나고 보니 괜스레 죄송한 마음도 든다.
건물 밖으로 나와 뒷공간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동물 모형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한 번도 앉지 않은 것 같은 탁자와 벤치가 있었다. 앉아보려고 다가갔다가 잔뜩 쌓여있는 먼지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떤 중년의 남성분께서 말을 거신다. 당직을 서고 계시는 선생님이실까?
“어디서 왔어요? 무슨 사진을 찍는 거예요?”
“저, 지인이 이곳 금산분교가 참 예쁘다고 하길래 와보았어요”
“허 허. 얼마 전엔 어디 학생들도 단체로 구경 왔었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더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짧은 대화에서도 그분의 표정과 말투에서 학교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좀 더 거닐다 보니 지붕 그늘에 또 다른 테이블과 바퀴 달린 의자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기 전 멀리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뒤에는 금산이 둘러져 있고, 아직 하늘은 파랗고, 황금빛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휴대폰 영상으로 그 모습을 짧게나마 담고 집에 와서도 몇 번을 돌려보았다. 마치 시골 마을 분교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맹렬히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꽤 크게 들렸지만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새와 강아지들이 우는소리가 너무나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아기자기 보는 재미가 있었던 뒤뜰 공간을 뒤로하고 다시 본 건물 앞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 보았던 아무도 앉지 않은 듯한 벤치처럼 운동장에도 아무도 쓰지 않는, 아니면 과연 물은 나올까 싶을 정도로 메말라 있는 수돗가가 보였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이곳. 과연 아이들이 있는 시간엔 또 어떤 모습일까. 푸른 잔디밭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모습, 작은 단상에서 훈화 말씀 중인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며 나란히 줄 서 있는 모습, 길고 좁은 복도를 우당탕 뛰어다니는 모습. 너무나도 조용한 학교에 혼자 있다 보니 활기찰 때의 이곳도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20여 년 전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이었던 나의 모습도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집에 어떤 우환이 있어도 그건 어른들의 일이었다.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해맑게 웃고 열심히 뛰어놀기에도 하루는 짧았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럴까? 이곳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 집으로? 학원으로?
공항철도 영종역에 내려 출구에 적혀있던 ‘영종 초등학교 금산 분교장’. 어떤 곳일까? 인천에 분교가 있다니! 하는 궁금증만 가졌을 뿐, 가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장소를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
그렇게 짧은 학교 구경을 마치고 다시 교문을 나섰다. 들어올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현수막이 하나 보였다.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를 위한 학교 역사 자료 수집 및 인물 추천을 받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중 계성여고도 꽤 오래된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100년이 된 학교라니. 추진 중인 이 100주년 기념사업이 공개된다면 나도 꼭 구경해보고 싶다.
이젠 진짜로 학교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갔다. 영종역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는데 학교 방향으로 학생 하나가 내가 나온 길을 걸어간다. 학교 뒤쪽으로 사람이 사는 듯한 집이 보이던데 그곳에 사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학교에 가려는 걸까, 학교에 뭐라도 놔두고 온 걸까.
지는 해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느지막이 나왔는데도 해가 긴 요즘 아직도 완전히 어둡지 않다. 걸어온 길을 다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한층 더 낮아진 석양이 나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