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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Sep 23. 2019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심장

Castells Torres Humanas (인간 탑 쌓기)


가는 길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로는 차 없는 길로 바뀌었다.

한낮의 강열한 햇빛과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로 도시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곧 있을 그 진실되고 독특한 문화행사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발길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가느다란 정맥을 지나는 뜨거운 혈액이 심장을 향해 흐르듯, 시청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마다 인산인해다. 진입을 포기하고 세워져 있는 유모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흠... 어린 아기 데리고 올 일은 아니야.'

인파를 뚫고 들어가는 남편 뒤를 따라가며 푸념한다.

평소에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아기띠로 치지베베까지 안은 채로 자꾸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놀랍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볼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더군다나 처음 보는 것도 아닌 것을...'

짝달싹 못하게 사람들 사이에 끼어버린 나는 짜증 게이지가 슬슬 상승한다. 남편을 불러도 듣지를 못한다. 나만큼이나 답답하고 숨이 막혔는지 치지베베가 적당한 시기에 울어준다.

아빠 집에 가자!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Castells Torres humanas de Catalunya (인간 탑 쌓기)

바르셀로나의 9월은 여러 축제들로 가득하다.

그중 축제들의 축제(the festival of festivals in Barcelona)라 불리는 것이 '라 메르세(La Mercè)' 다.

도시의 수호성인 중 하나인 Lady of the Mercy를 기념하는 축제인 '라 메스세'는 바르셀로나를 포함하는 카탈루냐 주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5일간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도시 곳곳에서 행하여지는데, 그중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행사는 바로 'Castells, or human towers(인간 탑 쌓기)'.

강인함, 균형, 용기 그리고 참된 마음과 고요를 모토로 한 이 행사는 거의 400년간 이어져오는 뿌리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


인간 탑 쌓기의 시작은 튼튼한 베이스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pinya'라고 불리는 탑의 베이스는 주로 건장한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혹시나 탑이 무너질 것에 대비해서 쿠션 역할도 하는 베이스는 시간이 갈수록 가중되는 무게를 오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인내력과 건강한 신체가 요구된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견고하게 탑을 쌓아간다.

그렇게 공을 들여 베이스라인이 완성되고 나면, 탑을 높게 쌓아 올릴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전통 음악 'Toc de Castells'가 광장 안 울려 퍼진다.


사방에서 세명, 또는 네 명의 탑 중간라인들이 베이스의 등을 타고 올라간다.  

속도감과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다.

베이스라인에게 부담 주지 않을 만큼의 빠른 스피드와 더 위층에 올라갈 사람들을 위한 안정감을 유지하며 탑의 허리를 완성시켜 나간다.

그렇게 탑이 쌓아져 목까지 완성되고 나면,  마침내 탑의 정상이 만들어질 차례.

탑의 꼭대기를 오르는 사람을 'enxaneta'라 칭하는데, 보통은 가볍고 민첩한 어린아이가 그 역할을 맡는다.

높게는 10층 높이까지 올라가는 인간 탑이기에 enxaneta에게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nxaneta가 정상에 올라 바로 서서 한 손을 들어, 숨죽이며 그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그러고 나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로 광장은  한 번 출렁인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이 행사는 관광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가족이 모든 것의 중심인 이곳 사람들의 삶이 '인간 탑 쌓기'에 그대로 녹아있다.

탑의 일부가 되는 사람들'Castellers'은 부모와 어린 자녀 또는 조부모부터 손주 세대까지 3대가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일 년을 땀 흘리며 연습의 연습을 거듭한다.

혹시나 어린 자녀가 다칠까 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바닥을 다져준다. 시간이 갈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단단하게 바닥을 지지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몸에 힘은 점점 빠져가지만,  정상에 올라 성공의 환희를 누릴 자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참고 참고, 버티고 버틴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그렇게...


남편은 치지베베에게 이 상징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 못 할 테지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아가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테다.


 치지베베는 오늘도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한다. 엄마 바짓가랑이도 잡고, 엄마 티셔츠도 잡아 늘리면서...

아마도 치지베베는 enxaneta가 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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