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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Sep 17. 2019

천만 원짜리 모빌


열린 발코니 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모빌이 춤을 춘다. 그 흥겨움이 전해졌던지, 침대에서 책 먹고 있던 치지베베가 하던 일을 멈추고선 모빌을 쳐다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춤사위에 기분 좋아,

까르르 까르르 신이 났다.

이제 슬슬 모빌이 지겨워질 월령이 되었는데도 아직 치지베베는 모빌을 사랑한다.

아빠의 사랑을 녹여 만들어진 것을

아기도 아는 모양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틈틈이 베이비페어도 좀 다니면서 육아용품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미리 공부하고 가. 그래야 스페인 가서 뭘 사야 할지 각이 나올 테니까."라는 절친의 진심 어린 충고를 나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었다.

뭐든 모르는 부분은 더 알아보고 배워두면 이로운 게 사실이지만,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겨날까 봐서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았다.

혹여 욕심부려 산다고 해도, 짐 쌀 때 넣다 뺐다를 반복하며 못 가져가는 걸 아쉬워할 바엔 차라리 안 봐서 모르는 게 속 편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육아용품 하나 없는 상태로 육아를 시작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모빌?! 내가 만들어 볼게.

"신생아는 대개 생후 2개월까지는 흑백, 그리고 노랑, 빨강, 파랑 정도 볼 수 있어. 그러니 흑백 모빌부터 시작해."

걸어 다니는 육아백과사전인 절친으로부터 치지베베에게 모빌이 필요하다는 교육을 받은 날, 엄마인 나는 어디로, 어떻게 모빌을 사러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반면 아빠는...


절친의 교육이 끝나자마자, 옷장에서 세탁소용 옷걸이를 꺼내 손에 들고 거실로 나갔다.

종이 자르는 소리, 스카치테이프 감는 소리가 잠깐 나는가 싶더니 금세 나름 완성품스러운 것을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걸 천장에 난 틈새에 고정시키고 돌려보면서, 남편이 말했다.

"모빌?! 내가 만들었어!"


치지베베가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육아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필수 아이템이라는 그 'T'로 시작하는 모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나.

그 모빌에 대해 검색해보면 볼수록 그것이 너무 갖고 싶어 졌다. 

이래서 '견물생심'이란 사자성어가 있는 것을...

보면 볼수록 탐나는 그 물건에 결국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지인 중에 그것이 있는 친구가 있었고, 때마침 남편이 잠깐 한국 다녀와야 할 때랑 맞물려, 남편이 그걸 짐에 넣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자기! 이번에 한국 다녀올 때 모빌 하나 가져와 줄래?"

"모빌? 우리 내가 만든 모빌 있잖아."

"응, 그렇긴 한데 이제는 색깔도 더 다양하고 음악도 나오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그런 모빌이 필요할 거 같아..."

주저주저하며 말을 끝낸 내가 남편을 쳐다봤을 때,

'아차...'싶었다.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당시 남편은 알고 나는 알지 못했던 것.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면된다고 알고 그렇게 살아온 나는,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주는 사람의 그 따뜻한 마음을 알지 못했다.

만드는 손길 가득 사랑의 호흡을 불어넣었을 그 아름다운 과정을, 기성품이 주는 편리함으로 묻어버리려고 했었다.


가치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그 '아빠표 모빌'은 그래서 아직도 잘 돌아간다.

훗날 치지베베에게 웃으며 전해줄 이야기와 함께.


시작은 흑백으로. 중간에 여러번 덩치를 키웠다. 아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원하는 아빠의 꿈을 담아 모빌 꼭대기는 우주선 모양이다. 아빠가 만들때 아들은 아빠를 한없이 쳐다보았다


부족함을 아는 삶이었음 싶다.

원하면 무엇이든 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우면 좋겠다.

물질의 양에 정비례하게 정신이 채워지는 것은 아닐 테니,

스스로 채워가는 재미를 알아가면 더 좋겠다.

흑백의 모빌에 색이 더해지듯이,

점점 더 재미나지는 삶이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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