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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Dec 30. 2019

부족함 덕분이다

2019년을 밝혀준 고마운 그녀들 이야기


늦깎이 유학생 남편과 캐리어 하나씩 달랑 들고 날아와 시작한 이곳에서의 생활이었다. 평소에 물건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았던 우리 커플은 몇 년을 살아내야 하는 해외 살이었건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산지 여러 해였던 터라, 더 이상 '부족함'이 불편함을 불러오지 않는 상태였고 그 대신 그 안에서 자연스러움까지 느끼고 있던 때였으니 이곳에서의 유학생활도 큰 무리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는 법.

지난 1월에 출산을 하고 난 후 '부족함'에 대한 그전의 확고했던 신념이 슬슬 흔들리기 시작했다. 육아의 힘은 아이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표현을 이때 처음 들은 나는 내 몸이 힘든 것이 육아템의 부재 때문이라 믿게 되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부족함이 불편함에서 끝이 났다면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였을 텐데,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야기하는 지경에 다다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는 사람이 없던 이곳에서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참으로 감사한 공간이 하나 있다. 어느 나라에나 한인 교민분들이나 유학생분들이 많은 곳에는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도 그랬다. 이 인터넷 카페에 육아용품을 사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반나절 만에 열명이 넘는  엄마들로부터 쪽지가 왔다. 타국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음에 한 번, 그리고 수백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육아용품에 또 한 번 놀란 나는 무엇을 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어리바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가 이곳에 와 살면서 알고 지낸 유일한 한국인 그녀 H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00 사이트에 글 올리셨죠? 당장 글 내려요!!!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순간 당황했다. 내가 쓴 문장에 어떤 오류가 있나 싶어서 다시 확인했는데 그런 문제는 아닌 듯했다.

물음표를 담은 메시지를 그녀에게 보낸 후 한참을 기다린 끝에 돌아온 답에는 따뜻한 마침표가 하트 표시와 함께 가득 담겨있었다.

"이곳에서 인연을 맺은 지인 분 중에 돌이 막 지난 아이가 있는 분이 있어요. 그분께 아기 용품들 나눔 받을 수 있게 부탁해놓았으니 웬만한 건 그분이 다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일단은 글을 내리세요~~♡"


이 메시지를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나이는 나와 같지만,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아이를 둔 엄마인 그녀는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내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노력으로 쌓은 인맥을 풀가동 해 내게 도움을 줄 길까지 터놓고 있었던 거다. 그녀의 따뜻하섬세한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 순간, 내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정지된 휴대폰 화면 위로 감사의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새벽에 온 메시지: 아직도 포대기 필요하세요?

치지베베가 태어나고 두 달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미니멀 육아랍시고 아기띠 하나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현실 육아는 그렇게 정석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아기의 몸무게를 굵직한 팔뚝과 튼실한 어깨로 감당하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던 그때. 나는 또 한 번 00 사이트에 아기 포대기를 사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아기 포대기를 사용하니 두 팔이 자유를 얻었고 어깨 통증이 사라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포대기 예찬론자 친구의 말은 마치 바이블처럼 귀에 쏙 박혔다. 한국식 포대기만 있으면 내 어깨를 관통해 뒷목으로 뻗어나가는 그 묵직한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 포대기를 어떻게 공수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만큼 그 당시에 나는 포대기에 꽤나 집착하고 있었다.


글을 올리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한국식 포대기를 찾는다는 것이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인가 보다 생각하며 미련을 버리자 마음먹고 있던 그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벽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포대기 필요하시다고요? 제가 하나 드릴게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가 뭘 잘못 본건가 했다. 집착을 넘어 이제는 헛것이 다 보이는구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확인한 메시지에는 정말이지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팔겠다는 게 아니고 "하나 드릴게요."라고.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얼른 그 천사 같은 분을 만날 약속을 잡았다. 가볍다 못해 거의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카페 앞에서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국인 여성 한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비치던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더 자세히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부릅떴던 내 눈은 그녀의 환히 웃는 얼굴을 지나 볼록한 배에 고정되었다.

그랬다. 그녀는 산달이 임박한 만삭의 임신부였다. 그런 그녀가 내 글을 읽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포대기를 들고 나온 거다. 본인은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를 나누는 것이니 부담 없이 받으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참 따뜻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따뜻한 한국인의 마음이다. 빚을 많이 진 인생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갚으며 살자.'



엄마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들 투성이었던 내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천사 같은 그녀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본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오랜 인디언 속담이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이 공간에서도 그대로 증명되고 있음을 느낀다. 진리는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이고 그 진리를 이끄는 주체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임을 깨닫는 이 순간, 마음속 가득 따뜻함이 흐른다.


다 부족함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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