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 결핍이자 영감의 원천은 별리(別離)

내 생애 최초의 기억에서 이별까지

by 드작 Mulgogi

누군가 별리(別離) 즉, 이별은 두 가지로 나뉜다 했다.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는 이별과 몸이 닿지 않는 사별.


내 생애 최초의 이별은 뭘까.

그전에 생애 최초의 기억인 세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첫 번째 기억은 80년대 지방 도시에 방 하나 반 입식 부엌이 딸린 신혼부부의 집. 방에 난 큰 창을 통해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고 부엌에는 수돗물이 큰 고무대야 아래로 콸콸 쏟아지고 있어 어수선했다. 스물다섯의 젊은 엄마는 무릎에 나를 눕혀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생애 최초의 기억이다. 샴푸가 눈에 들어가 매웠던 나는 칭얼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머리 감기 미션이라도 하듯 나의 볼멘소리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좀 있으라며 떼쓰는 나를 된통 혼냈다. ㅡ여담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외할머니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는 편인 듯하다. ㅡ나는 뭐가 그토록 서러웠는지 울음을 멈추고도 한참 동안 딸꾹질이 멎지 않았다. 점심으론 엄마가 라면을 끓여줘 함께 먹었다. 유년 시절 몇 안 되는 엄마와의 추억이라 이마저도 내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기억은 외할머니 집 앞의 넓디넓은 배 밭. 해질 무렵의 햇살이 찬란하다. 그곳에서 토끼털 조끼를 입은 나는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넘어질 듯 말 듯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했다. 현재는 내 키를 훌쩍 넘는 배나무들 사이에 찬란하게 내려앉는 햇살과 바람이 살랑거리며 세 살짜리 꼬마의 머리칼을 간지럽혔듯 여전히 유년의 잔상은 내 머릿속에 일렁인다.


부모님은 내가 세 살 때 이혼을 하셨다. 아빠는 고작 다섯 살에 산골에서 그네를 타다 뒤에서 누군가 밀어 한쪽 눈을 실명했다. 우안을 잃은 트라우마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언제부터인가 알코올과 환청을 달고 살았다 했다. 나는 그의 환청이 조현병이란 사실을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결혼 전 그의 우안이 의안이라는 것도 몰랐으며, 알코올 의존증과 함께 환청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외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이른 나이에 취업해야 했던 엄마는 가난한 생활이 지긋지긋해 아빠와의 결혼을 택했다고 한다.


아빠는 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형제 중 유일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꽤 총명해 대도시의 큰 기업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할머니는 아빠가 술만 마시지 않으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했다. 하지만 점점 알코올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고 폭음한 날이면 엄마는 세 살배기 딸을 데리고 집 밖에서 기다렸다가 아빠가 잠든 후 살며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결심했고 나를 떠났다.

내 생애 최초 이별이었다.


일각에서는 자식을 버렸다 매도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갓 스물다섯이 된 젊은 애기 엄마는 아빠의 술주정을 감당하기 버거웠으리라 이해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아빠의 섬세하지 못한 보살핌을 받다가 경북 산골의 큰집과 울산 외할머니 집을 오가며 여러 사람 손에 양육되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는 최초로 본 생물체를 어미로 여기고 강한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엄마와 같은 애착 대상을 여러 명 거치며 정을 붙일만하면 이내 헤어지길 반복해야 했다.


내 결핍의 시초는 이런 가정환경 때문이리라. 엄마를 이해하면 할수록 아빠를 원망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나이를 어느새 훌쩍 넘고 보니, 아빠 또한 다섯 살에 한쪽 눈을 실명하고 원치 않는 병을 얻은 데다 이혼 후 어린 딸을 돌보느라 얼마나 삶이 고독했을까. 연민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 그들 각각의 삶의 애환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젊은 날의 부모님도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었을 테니까.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부모님의 삶을 통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그런 나의 유년은 늘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자아를 인식할 즈음엔 날짜(년/월/일)를 기억하며 그날 만난 사람과 함께 했던 일, 그리고 그 사람이 입었던 옷까지 기억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이렇듯 남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다섯 살에서 예닐곱 살의 기억이 내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생애 최초의 기억에서 생애 최초의 이별까지. 이렇듯 내 기억력이 남들에 비해 유난히 좋았던 이유는 유추컨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후 그들을 잊지 않으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산물이자 방어기제였다. 지금은 언제든 볼 수 있는 엄마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라져 간 엄마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와 몇 되지 않는 추억을 손에 꼭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다시 만났을 때 엄마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럴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마음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이별하는 일이다.

아마 내게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