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스물아홉, 죽기로 결심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by 드작 Mulgogi

그와 헤어졌다. 스물 하고도 아홉.


나는 방금 남자 친구와 헤어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서른을 목전에 둔 여자가 됐다. 직장생활 5년 차 학자금 대출을 갚고 매월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만으로도 벅찬 서울살이는 밑 빠진 통장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열아홉에 내가 꿈꾼 서른의 광경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스무 살만 되면 대학만 들어가면 드라마에서 처럼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서른 살 즈음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오피스텔에서 일도 사랑도 존나 열심히 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가진 거라곤 약간의 인간관계가 전부였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일까? 자문해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 자신이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세찬 비바람이 너 인생 잘못 살았다고, 나의 싸대기를 수차례 반복해 때리는 것만 같았다.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때 들려오던 주변 지인들의 소식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나 둘 연애라는 허들을 넘어 결혼을 한다, 더 좋은 직장에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 승차감 좋은 외제차를 타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임신과 출산을 하고 그 아이가 첫 돌이 되었다는 등등 나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세계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 게 없는 데 나만 빼고 모두 잘 사는 것만 같다. 할 수 있다면 외면하고 싶었다. 한 없이 초라하기만 한 내 스물아홉은 타인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며 불행을 자처하며 행복에 안달 나 있었다.


실연의 아픔은 1년 넘게 지속됐고, 괴로운 마음에 매일같이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숙취에 시달리며 출근하던 중 문득 달리는 전철 창밖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옥수역에서 압구정역을 향하던 중이었는데 한강에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괴로운 게 생(生)이라면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극단적인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그리곤 풍덩. 다리 위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상상을 해봤다. 아찔했다.


가족들과 보고 싶은 몇 얼굴들이 몇 떠올랐다.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아빠, 평생 깻잎과 상추를 손수 재배해 시장에서 판 돈으로 나를 입히고 먹이고 거두셨던 외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느그 아버이는 니뿐이다.' 라며 누구보다 아버지와 나를 걱정하셨던 친할머니, 엄마, 아직 어린 동생들. 그들을 생각하면 '내가 잘못되면 안돼.' 라며 혼잣말을 되뇌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던 나였기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정신이 번쩍 뜨였다.

실연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나를 짓누르는 모든 삶의 중력이 미치도록 버거웠다.


2년 동안 오직 실연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실상은 김동률의 노랫말ㅡ널 기다리는 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널 잊는다는 게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이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ㅡ처럼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한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말이 오히려 몹시 두려웠다. 그러나 시간은 차츰 나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매일 술에 절어 아픔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금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외롭고 고단할 땐 책이 늘 곁을 주었다는 걸 떠올랐다. 무작위로 책을 읽고, 새롭게 무언가 배우기 시작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만난 늘해랑(늘 해와 함께 살아가는 밝고 건강한 사람들의 독서모임)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고전 교육 봉사활동, 꿈은 있으나 어떻게 이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드림페스티벌에서 드림메이커로 활동, 당시 대통령 유력 후보였던 국회의원의 3040 시민자문단을 비롯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외수 선생님의 문학 연수를 받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안다.

지금은 바닥이지만 곧 탁 차고 올라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 좋아하는 말이다. 자아실현이라 해도 좋다. 태어날 땐 순서가 있어도 갈 땐 순서가 없다는데, 내가 오늘 당장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를일 아닌가? 그럼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오늘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은 먹고,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살자는 소신이 생겼다. 그렇게 죽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버킷리스트로 촘촘히 작성해 내려갔다.


나의 습성 중의 하나가 과거를 잘 잊지 못하는 건데,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시너지를 얻으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가다보니 실연의 아픔도 점차 옅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심장이 쿵광거리고 쾌감이 들었다. 이제서야 진정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내 여행의 시작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유럽에서 1년 살아 보기‘를 이루는 과정이자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묻고 싶었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던 내가 그렇지 못했기에 사람들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여행의 마지막 목표는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는 것이다.


살면서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사람과 이별 후, 나는 여러 이유에서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찼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일곱 번째 제자 성인 야고보가 걸었다는 순례길. 인간은 극한 순간에 다다르면 본성을 드러낸다는데, 고행 속에서 남녀가 서로의 밑바닥을 마주하고도 헤어지지 않으면 결혼까지 가도 좋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나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고행길을 함께 걷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산티아고의 길을 함께 걸어야지.


산티아고의 길을 꼭 걷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내가 쓰는 소설 속 배경이 된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을 꼭 걸어봐야 생생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연 그곳에서 나는 어떤 이들을 만나고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까. 1년 후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귀국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년 동안 나는 어디에서 누굴 만나고 무얼 하게 될까.


두근두근-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드는 길은 지금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