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별에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나의 아킬레스건

by 드작 Mulgogi

아킬레스건은 발뒤꿈치 뒤에 있는 강한 힘줄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는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킬레우스(Achileus)를 낳았다.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발뒤꿈치를 잡은 채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그를 담갔는데, 이때 잡고 있던 발목 부위가 물에 잠기질 않아서 발꿈치 부위는 불사신의 몸이 되지 않았고, 아킬레우스의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이다. 이후 트로이 전쟁 때 적군인 트로이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이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십 년 전. 나는 버스를 타고 지방의 소도시로 향했다. 전날 그가 전화로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롤리팝 같은 사랑 후 찾아온 예고 없는 이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은 나는 그에게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이야기하자 했다.


이미 전화로 할 얘긴 다 했으니 오지 말라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모하게도 그가 사는 도시로 향했다. 좋게 말하면 강단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애착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다. 아동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유아기의 애착 단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지만 지금은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늦겨울이자 이른 봄의 2월. 그날 아침 공기에 물기가 촉촉이 묻은 흐린 날씨가 꼭 오늘과 닮았다. 귓가엔 레이첼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Be Be Your Love가 내려앉았다. 아마도 같은 노래를 백번 넘게 무한 반복적으로 재생시켰던 것 같다.


그즈음 읽던 책에 나온 VD(Vivid Dream)=Reality라는 공식을 되새기기도 했다. 그가 마음을 돌려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그동안 가졌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원망으로 남지 않도록 웃으면서 이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바랐다.


그때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마음이었고 사랑 앞에 자존심 따윈 중요치 않았다.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생의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소신은 변함없다. 왠지 내 삶의 궤적엔 자존심보단 자존감이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버스 안에서 나는 운동선수들이 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그를 만나면 환하게 웃을 것. 아이처럼 굴지 말 것. 어른처럼 그의 결정을 존중할 것. 그리고 마지막 대화를 마치면 그와 마지막 이별을 잘 마무리할 것. 대충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자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스물여섯의 그는 이별에 더럽게 서툴렀다.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만류했지만 결국 나의 고집에 마지못해 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이별에 서툰 것엔 틀림없었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았던 것임에도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별통보를 한 여자가 온다고 버스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올 리는 없는 법이니까.


만나자마자 그는 날카롭게 치켜뜬 눈으로 작정하고 상처 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에도 정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송곳으로 마음을 쿡쿡 찌르듯 아팠다. 그는 마치 칼에 베인 손에 구태여 소금까지 뿌리며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려는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도 파고들어 아팠다.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듯 사랑과 이별을 택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먼저 이별을 고한 사람이 결코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그들 각각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처럼 그를 이해해 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이유가 뭐야?”

나는 이별에 있어 하나마나한 질문을 했다.

그는 “사람,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어요?”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꼭 이유가 필요해 보이는 내게 “아, 얼굴이요. 얼굴이 보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기가 찼다. 생각하니 쓰레기였다. 하지만 나는 금세 알아챘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일종의 위악이었음을. 문자나 SNS로 이별을 통보하는 시대에 무작정 이야기나 하자고 찾아온 내게 차갑게 굴어 정을 떼기 위해서였다.


그는 독하고 차갑게 연기를 했지만 평소와 180도 다른 모습이 어쩐지 어색했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날카로운 눈빛 속에서도 진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저 너머의 진실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처럼. 그러다 나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여리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별에 더럽게 서툰 그는 연기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치기 어린 그의 눈빛은 나를 쏘아보지만, 그건 모두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걸.


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별에 대처할 시간.

이별에도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불현듯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도 나는 이별에 무방비한 상태였다. 이렇듯 그가 택한 일방적인 이별 통보는 나에겐 유년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졌을 때 아픔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버스 안에서 이미지 트레이닝하며 다짐했듯 아이처럼 떼쓰지 않으면서 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 그에게 부탁했다. 내가 이별에 대처할 단 며칠의 시간이라도 달라고. 유년 시절 부모님의 일방적 통보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가 싫었기 때문이었고, 마찬가지로 그와의 이별에 대처할 시간이 '이별의 유예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철없는 나의 애원에 그는 마지못해 그러겠노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별의 유예기간 끝에 여전히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던 우린 다시 사귀게 되었다. 연애 초반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 에피소드치곤 아픈 이별을 경험했기에 다신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두 번 다신 내게 먼저 이별 통보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고, 끝내 우린 헤어졌지만 그는 약속만큼은 잘 지켜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한다면 서로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서로의 방어기제를 알아차리고 세심하게 어루만져 줘야 한다는 걸.


그래서 그런지 매해 늦겨울이자 이른 봄의 기운이 몰려오는 달. 공기가 물기를 촉촉이 머금고 눈발이 소로로 피어오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른 봄 그와 첫 번째 이별을 하고 돌아오던 날의 기억이 아스라이 피워 오른다. 잿빛 하늘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먹구름은 울음을 참아내는 것 같았던 그날 위로 체온을 잃은 하얀 입김이 다시 한 번 이별과 결핍을 고한다.


나의 아킬레스건을 지켜줘 고마웠고 잘 지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