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이 나의 피트니스 센터다.
달리기를 하면 좋은점
슬플 땐 달리기를 한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듯
슬픔의 빈도가 잦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은 어쩌면, 그토록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밀려오면 오해와 이해의 숲 사이를 번갈아 뛰기 시작하고 영화는 재생된다 1968년 프라하의 봄 가벼움과 무거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토마스 당신은 어쩌면, 그토록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첫 눈에 반한 당신의 아내 테레사를 사랑하면서 또 다른 영감을 주는 당신의 내연녀 사비나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니 나는 달릴 수밖에
해거름에 턱까지 차오른 숨: 은 내게 살라지만
꾸역꾸역 억누른 울음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쩌질 못한다
당신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라는 쓸쓸한 독백이 심박 수와 뒤섞여 눈물범벅 되어도 달리는 동안 사람들은 내가 우는 걸 모를 것이다
이게 바로 달리기를 하면 좋은 점이다
유월과 칠월 사이의 더블린 일상이다.
아일랜드는 지금 저녁 9시 25분경.
새벽녘에 자꾸 잠이 깨는 것이 아무래도 혈액순환이 안 돼 그런 거 같아서 오늘부터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가 창을 열었는데 바람도 마침맞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 앞에 있는 피닉스 파크ㅡ유럽 도심공원 중 가장 큰 공원ㅡ를 한 바퀴 돌려고 나오는데, 플랫 메이트들이 "그럼, 내일 오겠네요?" 하고 우스갯소릴 건넨다. 별 거 아닌데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피니스파크 내부에는 동물원을 비롯해 아일랜드 대통령관저, 미국 대사관저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운동이란 게 늘 하기 전에 귀찮아서 그렇지 하고나면 이만한 성취감이 없다. 게다가 건강해지기까지하니, 달리기를 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집 앞에 피니스파크가 있다 보니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이 공원이 나의 피트니스 센터인 셈이다. 이거 왠지 세계 갑부가 된 기분이다.
며칠 전 영화 <프라하의 봄>을 봤다. 체코 여행을 가기 전 꼭 한번 보고 가라는 한국 친구의 권유 때문이다. 체코가 소련군에 점령당한 후 1968년 체코의 민주자유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가 체코 출신 작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건 추후에 알게 됐다. 밀란쿤데라는 '프라하의 봄'을 직접 겪으며 박해를 당했고, 영화에서는 세 남녀의 존재에 대한 '가벼움'과 '무거움' 그리고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교감에 대해 부단히 설명해주고 있다.
흑백영화인데다 러닝타임이 길어 지루한 듯 했으나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기회가 되면 책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달리기를 하면서도 상념에 젖어들어 헤어나오질 못했다. 며칠 전 가이드 일을 하면서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귓가에 나폴거리는 음악과 함께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달리기를 하는 동안, 기다렸던 반가운 소식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오가며 관광 가이드 일자리를 얻었는데 내일 일정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전화였다. 사실 저번 가이드 일정 때 저조한 성적으로 가이드 회사 대표님께 인정받지 못해서 줄곧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잃어버린 신뢰를 조금씩 회복하기 위해 이번엔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고 잘 할 수 있겠지? 라고 스스로 자문해본다. Yes!!! 석양이 저리 비춰주는데 뭐가 문제인가. 자신감에 찬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왠지 귀찮음을 이겨내고 달리기를 하고 있자니 좋은 소식이 온 것만 같아 괜히 달리기가 더 사랑스러워 지는 순간이다. 조금씩 나답게 나다운 삶으로 만들어 가는 길이 공원 이 곳 저 곳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