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눈물과 잡채는 왜 짠가

by 드작 Mulgogi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집에 실린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읽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의 뜻처럼 어느덧 환갑이 넘은 부모님과 올해로 아흔두 살이신 외할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1930년생인 할머니는 스물여덟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가 노처녀가 되자 큰언니의 중매로 할아버지와 결혼하셨단다. 당시 할아버지는 논밭과 재산이 많다고 속여 일종의 사기 결혼을 하셨고, 할머니는 시집와서 온갖 고생과 잡일은 다하셨다고. 훗날 할머니는 두고두고 할아버지를 원망하시곤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남편과 사별 후 시어머니와 세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할머니는 동네 배밭 품앗이나 아파트 건설 현장 청소, 그리고 남의 식당 일을 도와주며 가장 역할을 하셔야 했다. 후에 큰아들마저 배를 타다 전복사고로 실종 사하자 남편과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아픔을 평생 간직하며 사셔야 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 후, 이혼한 둘째 딸의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구실 삼아 손녀딸을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나를 거둬들이셨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돼 자식마저 모두 출가하고 나니 할머니도 많이 적적하셨으리라.


일곱 살에 외할머니 손에 맡겨진 나는 동네 언니 오빠들과 온갖 말썽을 핀다는 이유로 사랑이 듬뿍 담긴 경상도 욕과 회초리를 달고 자랐다. 엄격했지만 다정했던 할머니의 정을 어미 정 대신 받아먹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식구가 되었다.


"오늘 니 생일인데 미역국 끓여 묵었나?"


생일이면 소고기 미역국과 찰밥을 꼭 차려 주셨던 할머니는 생일날에는 국수나 당면과 같은 면을 먹어야 명이 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생일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먹었냐며 전화를 하시던 할머니는 요즘엔 내 생일도 잊어버리고, 하루하루 날짜와 요일이 헷갈린다고 내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시는 일이 잦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러 갔을 때, 여든여섯의 할머니는 외손녀를 위해 만든 잡채와 가자미조림과 파전까지 손수 만들어주셨다. 나는 나대로 할머니를 위해 언양 불고기를 포장해 갔는데, 할머니가 만든 음식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연세가 드심에 따라 손수 음식 차려 드시기도 귀찮다고 하시는 할머니가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이끌고서 만들었을 잡채에는 들어간 재료도 시원찮고 맛도 영 밍밍하기 그지없지만 할머니의 마음 같은 것들이 염분처럼 녹아 마음을 쨍하고 울렸던 것이다.


여든여섯이던 할머니는 올해로 아흔둘이 되셨고, 그땐 그래도 잡채를 만들어주실 기력은 있었는데 지금은 본인 식사 하나 차려 드시기 힘들어하신다. 일 년,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마뜩지 않아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내게 잡채는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에 나오는 설렁탕과 같다.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오늘 잡채는 왜 짠가.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진 양념을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며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ㅡ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