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달리기를 한다, 오늘도 달리기를 한다.
피닉스파크(유럽 도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원) 위 하늘은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다.
내가 슬플 때 위안이 되어준 친구 중 한명인 R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의 고단한 하루가 귓가를 스쳤다.
저 버티기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는 게 참 엿 같고 화가 치밀어 오는다는 R.
지금 그곳은 새벽 다섯 시.
이곳은 오후 아홉 시.
지구 반대편에서 R은 하늘이 머금은 눈물만큼 또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더 멀리 가보고 싶은 생의 충동처럼 평소에 달리는 반환지점을 넘어
사유의 숲을 달리고 그 위로 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차를 뛰어넘어 위로가 되어줄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제 한국에서 또 다른 친구로부터 받은 택배 상자 속을 열었다.
고이 들어있던 김소연의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을 펼쳐 들었다.
우연의 필연이었을까.
<실패의 장소>라는 시가 자박자박 걸어 나오더니 친구를 위로해줄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에 시를 담아 녹음했다. 같은 듯 다른 고민들을 하는 우리가 네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의 하루하루가 많이 힘들지 않도록 기도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와 달리기를 한다.
슬픔이 따뜻해봤자 라지만 슬픔은 힘이 강하다.
따뜻함이 묻은 슬픔은 사람을 살게 한다.
내가 그랬듯. 네가 그랬듯. 우리 조금만 더 우리의 하고 싶은 '글'이든 '꿈'을 위해 힘을 내자.
오후 아홉 시의 내가 새벽 다섯 시의 너에게.
실패의 장소
우리가 만난 곳을 생각해
내가 기대어 한숨을 쉬었던 그 벽에서
너는 두 손을 모아 균열에 대고 소원을 말했지
나는 오후 세 시에
너는 새벽 세 시에
꽃잎을 먹었어요
어차피 더럽게 떨어질 꽃잎이라서요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왜 바가 고플까요
언 귀를 비빌 때마다 우리가 만난 곳을 자주 생각해
악몽을 피처럼 낭자하게 흘리며 네가 쪽잠을 자던
알깨진 가로등 같은 몰골로 내가 마중을 나갔던
골목
오늘만 좀 재워주세요
기린과 코끼리와 들쥐 그리고 화분 한 개
내 짐은 이게 전부에요
새벽 세 시의 네가
오후 세 시의 나를
찾아왔던 날을 자꾸자꾸 생각해
언 발을 나무처럼 심어두고 싶었ㅈ만
어쩐지 흙에게 미안해져 그만두었어요
쓰러져 누운 모든 것들이
이불로 보이던 그 동네를 생각해
쓰러지며 발열하는 별 하나와 불빛 없는 상점들
같은 악몽을 사이좋게 꾸던
같은 소원을 사이좋게 버리던
ㅡ 실패의 장소, 김소연 시인 <수학자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