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밤을 떠올리면 외할머니의 희고 널따란 등이 떠오른다.
낮엔 밭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낮의 수고를 보상이라도 받듯 고봉밥을 한가득 드시던 할머니. 좋아하던 드라마를 시청하다 곯아떨어지는 그녀의 고단함은 고스란히 할머니의 희고 널따란 등에 스며든 것 같았다.
어른의 세계를 터럭만큼도 알 수 없던 일곱 살의 나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TV 화면조정까지 보고서야 잠을 청하곤 했다. 막상 불을 끄고 누우면 깜깜한 창밖으로 달빛에 비친 나뭇가지들이 어슬렁 춤을 추었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아무리 잠을 자려 애를 써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면 두 눈을 질끈 감고 할머니를 등을 꼭 껴안은 채 말랑말랑한 할머니의 젖가슴을 더듬으며 불안을 달래었다.
하나 머릿속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주의 천체가 떠올랐고, 순차적으로 넓디넓은 천체 속에 내가 누운 채 유영하는 장면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우주를 유령처럼 떠다니는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얼마나 두려웠던지.
잠은 더욱더 이억만 리 우주로 달아나 버리고 덜컥 겁이 났다. '할머니가 죽으면 나는 다시는 할머니를 못 보는 걸까.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다시는 친구와 가족을 못 만나는 걸까'와 같은 사후 세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잠을 줄행랑치게 만들었다.
외할머니는 내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 내가 채 세 살이 되기 전 이혼을 선택한 부모님은 소정의 양육비를 주며 할머니의 손에 나를 맡겼다. 새끼 새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만나는 생명체를 ‘엄마’라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듯, 애착의 단계가 형성될 시기에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내게는 할머니는 어떤 존재보다도 큰 우주였던 것이다.
짐작컨대 할머니에게도 자식들이 모두 출가해 적적하던 찰나. 애물단지 같던 나와 함께 살면서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 솔직히 여쭤본 적은 없지만, 분명 할머니에게도 내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차츰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지 않아도 될 나이의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기로 결정되었고, 할머니와 가시적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했던지 아버지 집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할머니를 방문할 정도였다.
어릴 적 할머니가 일하다 새참으로 받은 빵을 나를 위해 남겨 두신 것처럼, 나는 한 달 용돈을 쪼개어 할머니가 좋아하는 맘모스 빵을 사들고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입시를 치르면서 할머니를 방문하는 횟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에서 한 번씩. 이주에 한 번에서 다시 한 달에 한 번으로 그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오면서부턴 지방에 있는 할머니를 일 년에 두어 번 뵈러 갈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할머니를 방문하는 횟수가 일주일에서 일 년으로 주기가 변했고, 두 번의 사고로 큰 수술을 한 할머니의 몸도 많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도 없고
할머니의 나이와 건강을 지켜드릴 수도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도 여전히, 할머니는 내게 우주적인 존재로 남아있다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