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6개의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 제목들
억기[憶起]란 연상에 의하여 과거의 경험을 다시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작용이다.
머리 위로 새하얀 눈이 벚꽃처럼 흩날리던 밤이었다. 음악적 취향이 잘 맞던 우리는 늘 이어폰을 한쪽 씩 나누어 끼고. 그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걸 좋아했다. 12월. 손과 발은 꽁꽁 얼어 시린데 뭐가 그리 재밌던지 깔깔깔 웃으며 전철역 몇 정거장을 걸었다.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던 내게 한숨까지 쉬며 핀잔을 주다가 이내 웃으며 장난을 되받아 치던 너. 그때 우린. 에피톤 프로젝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앨범 사진처럼 행복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모티브를 찾았다는 노래.
너와 이별 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던 목소리.
너무 자주 들어 눈시울이 자주 벌게지던,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일부러 듣지 않던 노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다 잊자고 했는데.
다 잊은 줄 알았는데.
향기나 사진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노래는 나를 다시 그 시절로 되돌려 놓고 만다. 생각한다.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모두 잊혀지는 게 아니라 그저 무뎌진 것이다. 이제는 정말 다 괜찮다고 여긴 일들. 봄이 찾아와 벚꽃이 만발하듯 그렇게 불쑥 오랜 감정에 불을 켠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오늘, 날씨가 좋아서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너무 아름다워 눈부신 날들이 리피 Liffey 강가에 반사되어 흘렀다. 꽉 움켜쥐고 있던 것들. 이제는 서서히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너무 멀리 와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날들과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한다.
더블린 휴스턴 Heuston 역에도 봄이 찾아오긴 했는데, 그대는 어디에.
하루는 카페에서 만난 아이리시 신사와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끔 그립거나 슬프니?'라고 노신사가 물었다. 난, 잠시 멈칫했지만 '뭐 가끔 그렇기도 해'라고 쿨한 척 답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듯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죄다 꺼내 들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모두 잊은 줄 알았는데. 그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향기가 난다.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다 잊혀지는 게 아니라 그저 무뎌진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말할 때 그의 사소한 표정이나 버릇까지.
여전히 이토록 선명하게 떠올를 순 없지 않은가. 반추한다.
언젠가 밤에 통화를 하다가 그에게 '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뭐야?'라고 물었다. 중학교 때 처음 접하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영화인 <굿바이 마이 프렌드>라고 답한 너를. 우연이라기엔 너무 놀라워 달뜬 목소리 방안을 한가득 메우던 시간을. 기억한다.
또 하루는 기분이 우울한 널 눈치채고 '기분은 어때?'라고 물었는데. '그냥, 그래.'라는 짤막한 대답으로도. 실은 지금 너의 기분이 아주 우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목소리만으로도 느낄 수 있던 나를. 기억한다. 알랭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말한 낭만적 운명론을 거론했듯. 내가 그런 너에게 빠져든 일은 어쩌면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지듯.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기분까지 알아채던 그때는. 사랑이 그저 내 곁에 있는 사랑이라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고, 이제와 눈을 뜨면 이미 과거에 불과하다고 너는 말할지 모르겠다. 이젠 그 시절의 너와 내가 아니니까.
새벽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음악을 듣다 말다, 회상을 하다 말다, 글을 쓰다 만다. 오늘 밤엔 무뎌진 감정을 우물에 둥둥 띄우고 대답 없는 우물 속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도 보고, 우물 속 내게 말을 걸어볼 것이다.
그래도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닐 거라고, 믿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