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14. 민달팽이의 위로, Are you Ok?

by 드작 Mulgogi

H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그녀의 브라질리언 남자 친구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고 싶다고 그녀를 데리고 와달라고 했다. 나도 가이드 공부로 정신이 없었지만 기꺼이 그러겠노라 하고, 그녀에게 생일이니 밥이라도 먹자고 연락을 했다.


H 역시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당시 극본 공모 마감으로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고 했다. 난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공모전을 하더라도 밥은 먹을 거 아니냐며, 아주 잠시면 되니까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게 정말 미안한데 정말 자기에겐 중요하다고 다음에 보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고, 그러자 그녀는 그런 거라면 공모전보다 서프라이즈 파티에 가야지 라면서 그제야 허락을 했다.


그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지만 파티에 초대된 친구들과 그리 친분이 있는 건 아니어서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부족한 맥주를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싶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간다고 했고, 나는 혼자 즐길만한 펍을 찾아 서성거렸다.


그러다 스쿨 파티를 했던 추억이 서린 워크맨 클럽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혼자 한잔 마셔도 전혀 이상해 보일 리 없을 것 같았다. 흥에 겨운 음악과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이방인이 한두어 명쯤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리투아니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만난 리투아니아 친구로 인해 난 이미 유럽에 리투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리투아니아 사람이란 것 말고는 도무지 매력이 없는 남자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난, 당신한테 관심 없다는 의미에서 리투아니아 사람 옆의 친구 아이리시에게 짐짓 물었어.


“당신 정말 아이리시예요?”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아이리시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리시이면서 아이리시가 아닌 그는 엄마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역시 내 감은 맞았던 걸까. 그리곤 다들 춤을 췄다.


그날 나는 혼자 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미친 듯이 춤을 췄다.

그러다 아주 근사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바로 옆에 애인고 함께 왔는데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아까 그 리투아니아인이 내게 계속 추근거리자 그녀가 날 대신해 “얘는 당신한테 관심 없으니까 꺼져!”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정말 멋졌고 우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알았지만 컴컴한 바에서 사진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우린 좀 취했던 것 같다.


마차가 호박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신데렐라도 아니고 그곳은 무도회장도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나는 도로변 가로등 아래에 한참을 서서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을 들었다. 이 음악은 인트로의 기타 선율이 오묘하게 왼쪽과 오른쪽 사운드가 달리해서 나오는데, 그걸 기가 막히게 녹음한 게 환장하게 좋다.


아, 계속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나는 마치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광활한 우주에서 충돌한 두 행성이 굉음을 내며 활활 불타오르다 떨어지는 유성의 잔해처럼 울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비애감에 사로잡힌 채. 새벽, 가로등 아래 주변은 고요했고 울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인 건 분명했다. 집으로 들어가면 플랫 메이트들이 모두 자고 있을 텐데 그들의 잠을 깨우는 건 민폐일 것이므로.


한데 지나가는 아이리시를 간과했다. 적막을 깨고 나타난 그는 내게 ARE YOU OK? 괜찮냐고 물었다. 도와줄 게 있느냐고. 나는 몰래 울다 들킨 사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벼르던 유성의 잔해 의식을 멈출 순 없었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멈추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법이니까.


게다가 절대 괜찮을 리 없지만 괜찮다,라고 말하자 그는 갈 길을 갔고 나는 몇 분을 더 그렇게 울었다. 내 속에 울분 같은 것들이 사그라진 후.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다.


난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의 전선 위에 너의 여럿인 동시에 하나가 가지런히 앉길래 나는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멍청하게도 나는 늘 이 모양이다. 젠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도록 너를 토해내듯 간밤에 마신 술을 토했다. 그간 이곳 더블린에서 겪은 쉽지 않은 어려운 것들 그리고 내 삶의 울분 같은 것들을 게어냈다. 모두 다 토해내고, 열병을 앓듯 신음하다 깨어보니 억눌린 자아가 비틀비틀거리는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한 번씩 내 속에 있는 걸 다 게어내고야 마는 나의 기질은 삶을 살면서 계산하지 않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불러내어 아주 이상한 꿈을 꾼 하루였다. 어제는.


그리곤 일어나서 주섬주섬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을 장롱에 넣으려고 하는데 재킷에 뭔가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어제 그렇게 엉엉 울어댔으니 재킷에 묻은 건 아마 눈물인가. 콧물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내 눈에 들어온 방바닥을 살금살금 기어가는 생명체. 뜨악 놀라고 만 그 생명체의 정체는 달팽이. 그것도 집이 없는 민달팽이 었다.


너무 놀랍지만 이 아이를 얼른 방에서 치워야지 싶어 휴지로 살포시 달팽이의 몸을 잡고 베란다 밖 잔디로 자유롭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간밤에 가로등 아래서 지질하게 엉엉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날 위로해주고 있었구나. 그게 바로 너였구나, 민달팽이의 위로를 받아서 울고 난 뒤 그렇게 마음이 개운했구나 싶다. 어쩌면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것처럼 달팽이의 모습을 한 신일지도.


God with us,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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