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그녀의 브라질리언 남자 친구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고 싶다고 그녀를 데리고 와달라고 했다. 나도 가이드 공부로 정신이 없었지만 기꺼이 그러겠노라 하고, 그녀에게 생일이니 밥이라도 먹자고 연락을 했다.
H 역시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당시 극본 공모 마감으로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고 했다. 난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공모전을 하더라도 밥은 먹을 거 아니냐며, 아주 잠시면 되니까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게 정말 미안한데 정말 자기에겐 중요하다고 다음에 보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고, 그러자 그녀는 그런 거라면 공모전보다 서프라이즈 파티에 가야지 라면서 그제야 허락을 했다.
그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지만 파티에 초대된 친구들과 그리 친분이 있는 건 아니어서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부족한 맥주를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싶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간다고 했고, 나는 혼자 즐길만한 펍을 찾아 서성거렸다.
그러다 스쿨 파티를 했던 추억이 서린 워크맨 클럽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혼자 한잔 마셔도 전혀 이상해 보일 리 없을 것 같았다. 흥에 겨운 음악과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이방인이 한두어 명쯤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리투아니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만난 리투아니아 친구로 인해 난 이미 유럽에 리투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리투아니아 사람이란 것 말고는 도무지 매력이 없는 남자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난, 당신한테 관심 없다는 의미에서 리투아니아 사람 옆의 친구 아이리시에게 짐짓 물었어.
“당신 정말 아이리시예요?”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아이리시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리시이면서 아이리시가 아닌 그는 엄마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역시 내 감은 맞았던 걸까. 그리곤 다들 춤을 췄다.
그날 나는 혼자 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미친 듯이 춤을 췄다.
그러다 아주 근사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바로 옆에 애인고 함께 왔는데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아까 그 리투아니아인이 내게 계속 추근거리자 그녀가 날 대신해 “얘는 당신한테 관심 없으니까 꺼져!”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정말 멋졌고 우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알았지만 컴컴한 바에서 사진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우린 좀 취했던 것 같다.
마차가 호박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신데렐라도 아니고 그곳은 무도회장도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나는 도로변 가로등 아래에 한참을 서서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을 들었다. 이 음악은 인트로의 기타 선율이 오묘하게 왼쪽과 오른쪽 사운드가 달리해서 나오는데, 그걸 기가 막히게 녹음한 게 환장하게 좋다.
아, 계속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나는 마치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광활한 우주에서 충돌한 두 행성이 굉음을 내며 활활 불타오르다 떨어지는 유성의 잔해처럼 울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비애감에 사로잡힌 채. 새벽, 가로등 아래 주변은 고요했고 울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인 건 분명했다. 집으로 들어가면 플랫 메이트들이 모두 자고 있을 텐데 그들의 잠을 깨우는 건 민폐일 것이므로.
한데 지나가는 아이리시를 간과했다. 적막을 깨고 나타난 그는 내게 ARE YOU OK? 괜찮냐고 물었다. 도와줄 게 있느냐고. 나는 몰래 울다 들킨 사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벼르던 유성의 잔해 의식을 멈출 순 없었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멈추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법이니까.
게다가 절대 괜찮을 리 없지만 괜찮다,라고 말하자 그는 갈 길을 갔고 나는 몇 분을 더 그렇게 울었다. 내 속에 울분 같은 것들이 사그라진 후.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다.
난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의 전선 위에 너의 여럿인 동시에 하나가 가지런히 앉길래 나는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멍청하게도 나는 늘 이 모양이다. 젠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도록 너를 토해내듯 간밤에 마신 술을 토했다. 그간 이곳 더블린에서 겪은 쉽지 않은 어려운 것들 그리고 내 삶의 울분 같은 것들을 게어냈다. 모두 다 토해내고, 열병을 앓듯 신음하다 깨어보니 억눌린 자아가 비틀비틀거리는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한 번씩 내 속에 있는 걸 다 게어내고야 마는 나의 기질은 삶을 살면서 계산하지 않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불러내어 아주 이상한 꿈을 꾼 하루였다. 어제는.
그리곤 일어나서 주섬주섬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을 장롱에 넣으려고 하는데 재킷에 뭔가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어제 그렇게 엉엉 울어댔으니 재킷에 묻은 건 아마 눈물인가. 콧물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내 눈에 들어온 방바닥을 살금살금 기어가는 생명체. 뜨악 놀라고 만 그 생명체의 정체는 달팽이. 그것도 집이 없는 민달팽이 었다.
너무 놀랍지만 이 아이를 얼른 방에서 치워야지 싶어 휴지로 살포시 달팽이의 몸을 잡고 베란다 밖 잔디로 자유롭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간밤에 가로등 아래서 지질하게 엉엉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날 위로해주고 있었구나. 그게 바로 너였구나, 민달팽이의 위로를 받아서 울고 난 뒤 그렇게 마음이 개운했구나 싶다. 어쩌면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것처럼 달팽이의 모습을 한 신일지도.
God with us, Alw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