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많은 여자의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어 떠난 여행.
당신과의 기억처럼 행복하고 싶어 시작한 여행입니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아버지를 사람 책으로 읽었습니다. 내 결핍의 시초이자 한때 원망의 대상인 아버지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밖에 못 살았어요?” 하고 실컷 힐난하고 싶던 날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작 다섯 살에 한쪽 눈을 실명하고 평생 그 트라우마로 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 당신 역시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고 싶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치던 아버지의 나이를 현재의 내가 훌쩍 뛰어넘고 나서야 당신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계신 아빠가 생각보다 건강이 꽤 많이 좋아지셨다. 몇 년 만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봤는지. 어릴 적부터 아빠의 웃는 얼굴이 그렇게도 좋았다. 다정했던 모습과 웃는 모습이 수줍던 아빠로 돌아오셨다. 맛있는 건 안 사 와도 되니까 딸이 맨 날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을 땐, 자주 못 와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인생이 후회된다고 하셨다. 그래도 담배랑 커피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셨다. ㅡ 2015년 2월의 일기 中』
아버지를 사람 책으로 읽으며 특히 가슴에 콕 박혔던 말입니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래도, 그래도, 이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가지는 의미가 제게는 남달랐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일 것 같은 아버지도 담배와 커피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셨을 땐 마음이 서걱거렸습니다.
할머니 임종 후 형제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해맑게 웃습니다. 믿을 곳이라곤 유일한 보호자인 나를 바라보는 순박한 얼굴이 마치 어릴 적 제가 아버지를 바라보던 모습과 오버 랩 되었고 세월은 두 부녀의 각기 달라진 관계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제가 아일랜드에 가있는 1년 동안 요양원에 홀로 계실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무겁지만 떠나야 한다는 제 안의 의지와 욕망을 꺾진 못했습니다. 가족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내느라 매일 꿈을 유보시킨 나는 딱 1년만 회사를 때려치우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선 나부터 행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삶이 고단했고 슬펐으며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었을 나의 아버지를 대신해 조금 더 먼 세상에 가닿고 싶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보다 더 넓은 대지를 밟고, 아버지가 가보지 못 한 세상엔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흙냄새가 나더라고요. 한 보따리의 이야기를 담아 아버지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의 자유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면 아버지도 속박 속에서도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해서요. 이젠 그만 우안(右眼)을 앗아간 옛 흙내음과 후회된다던 아버지의 삶을 스스로 용서하시라고요. 치유되지 않던 마음의 병도 모두 괜찮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바칩니다.
때때로 우린 너무 소중한 걸 놓치고 살아갑니다. 오늘 나의 삶은 어제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란 말처럼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현재)의 아름다운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다 햇볕에 바삭 말리면 좋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겪고 있는 지난한 상처도 언젠가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될 테니까요.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감사함으로 변하고, 동시에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겁니다. 저 역시 생을 마감할 때 결핍 많은 내 삶도 꽤 행복했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찾지 않으면 결코 가까이 있지도 않다는 이 평범하지만 고귀한 진리를 알게 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삶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게 된 당신의 딸이 자신의 삶이 후회된다던 아버지에게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당신으로 인해 많이 행복하다고.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해 세상의 수많은 사람 책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2015년의 이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