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하이드 나들이
어제오늘 봄이 성큼 다가온 더블린은 날씨마저 상냥하다.
어제는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친구들과 말라하이드(Malahide)에 다녀왔다. 타라 스트리트Tara street 역에서 다트Dart(기차)로 삼십 분. 더블린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바닷가 마을인 말라하이드에 가면 800년 전에 지어진 아일랜드 특유의 말라하이드 성(Malahide Castle)과 대정원을 볼 수 있다.
말라하이드 성의 경우 입장료를 내고 30분 정도 소요되는 가이드 투어를 들어볼 것을 권장한다. 이 성은 1174년 영국의 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에 올 때, 함께 온 기사 리차드 탈벗(Richard Talbot)에게 아일랜드 왕이 하사한 집으로 3층 타워 하우스로 건축되었다. 현재는 증축과 개축을 반복해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을 비롯해 여러 가지 건축양식이 섞여있다.
탈벗 가는 14명의 사람이 전쟁에 나가 그 날 모두 죽은 슬픈 역사를 가진 가문으로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아일랜드를 지배했던 1649~1660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1185년부터 마지막 탈벗 경(LordTalbot)이 죽던 1973년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 배런 탈벗(Baron Talbot)이 죽은 후 성은 그의 누이 로즈(Rose)에게 넘어갔고, 그녀는 이 건물을 아일랜드 정부에 매각하였다고. 현재 더블린 주의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 내부는 탈벗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다이닝룸Dining Room은 당시에 만찬을 즐기며 실내 관현악 연주와 스토리텔러 개그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성에는 다섯 명의 유령이 나와서 고스트 캐슬Ghost Castle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유령은 꼬마 유령이다. 불치병에 걸린 성에 사는 소녀를 좋아한 유령으로 키가 작아 꼬마 유령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난쟁이 유령이었다고 전해진다.
날씨가 좋아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자주 눈에 띈다. 우리도 파란 하늘과 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학원 개강 첫날 만난 특별한 인연 S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같은 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이때의 우리는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일랜드에서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절연하게 된 친구들이 몇 있다. 이곳에 갈 땐 함께였는데 사진 속에선 다들 환하게 웃고 있어 이 시절의 우리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 시절에도 감내해야 했던 삶의 시련과 슬픔과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당시 절연하고 싶을 만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친구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겠구나 이해가 된다. 처음엔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오해하고 폄훼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미움도 편견도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사진은 과거의 지난한 부분은 딸깍, 지우고 행복한 오직 그 순간만을 포착하여 나의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을 편집하곤 한다.
한참을 사진을 찍고 웃다 보니 이제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귀여운 꼬마 아가씨를 만났다. 볼 빨간 아이가 너무 귀엽다. 우리가 아이일 때처럼 아무 생각 말고, 단순하게. 긍정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헤쳐나간다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새순이 여기저기 움을 트듯. 나에게도 봄이 오지 않을까.
그동안 재정적인 문제와 집 구하는 문제로 움츠렸던 마음에 '자유'를 쓰듯. 말라하이드에 와서 친구들과 실컷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보니. 하늘을 날아오르는 아래 사진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해거름에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다시 한번 '긍정'을 긍정하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