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패트릭 데이 St. Patrick’s day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생을 축제로 비유했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 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3월 17일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인 세인트 패트릭 데이 St. Patrick's day 다.
더블린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인 패트릭을 기리는 유명한 축제다. 그를 상징하는 초록색 물결이 도시 곳곳에 출렁인다. 강물까지 초록으로 만들어 떠들썩하게 축제를 즐기기로 유명하다. 축제를 즐기기 전에 나는 전 세계를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세인트 패트릭 St. Patrick 은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최초로 전파한 사도(使徒)이다. 영국 브리타니아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 토지를 가진 부유한 교회의 부제였다. 16세 때 해적에 납치돼 양치기 포로 생활을 했는데, 그때 그는 하느님께 열렬히 귀의하였는데,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고 도망쳐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성직을 위한 학식을 쌓기 위해 '신앙생활의 규칙'과 '라틴어 성서'와 친숙해지는 데 힘썼지만, 일생 동안 더 깊은 학문을 배우지 못했음을 몹시 후회했다고 한다.
세인트 패트릭 St.Patrick이 아일랜드의 주교로 파견된 건 5C 경이다. 지방장관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자녀 교육을 먼저 실시했으며 사제를 양성하고 수도원과 수녀원을 세웠다. 만년에 고백록(Confessio)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영적인 순례기를 라틴어로 썼다. 이 책은 주교직에 있는 동안 자기에게 가해진 비판과 공격에 대한 응답 형식으로 쓰였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을 전파할 때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태양신(토테 이즘)을 믿고 있었는데, 원주민들에게 반감을 사지 않고 가톨릭이 그대들이 믿는 태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십자가에 태양을 닮은 동그라미를 함께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 관광지나 교회의 비석에는 아래와 같이 십자가 바깥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걸 볼 수 있다. 그는 460년에 죽었고 그의 묘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자, 이쯤 되면 그가 누군지는 알았고.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서 축제를 즐겨볼까 한다. 아무래도 축제의 장은 길거리가 최고라 그라프튼 스트릿 Grafton Street으로 가기로 했다. 그라프튼 스트릿은 더블린에서 쇼핑하기 좋은 장소 중 하나로 유명 백화점 및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데 한국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영화 <원스>에서 글렌 핸사드(Glen Hansa)가 이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쌀 아저씨로 유명한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도 한 때는 이곳에서 하루벌이 생활을 하는 가난한 뮤지션이었다고 하는.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거리기도 하다.
슬씨 커플과 KC Peach 밥을 먹고 KC Peach라는 카페에서 tea time을 가진 후. 그라프튼 스트릿 근처에 위치한 Chinese Restaurant인 찰리에 들렀다. 그곳에서 파트타임을 하는 H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라프튼 스트릿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거리는 초록 복장을 한 관중들로 붐볐고, 축제의 들뜬 기분이 나마저 들썩이게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이날만큼은 길거리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 날이라고 했다. 다들 술과 흥에 취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충만한 듯 보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컨트리 스타일의 투박하지만 즐거운 노래와 연주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 된 기분으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며 춤을 춘다. 처음 접하는 초록 물결이었지만, 나 같은 이방인도 그들 무리 속에 소속되어 있는 듯 느껴져 한껏 신이 났다. 과연, 축제답다.
축제라서 한껏 달뜬 기분으로 주일이 지나나고 축제가 끝난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
크리스마스, 새해, 추석, 설 등 한국에도 큰 명절마다 달뜬 기분보다는 조금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흥분의 도가니와도 같은 축제는 너무 화려해서 축제가 끝나면 무척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삶을 축제로 물들여야 하지만 하루하루 해야 할 일도 미루지 않도록 다짐하며.
오늘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