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밥에 대한 단상.
나는 밥을 좋아한다.
어쩔 땐 애인보다 밥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된 애인의 김 빠진 탄산음료와 같은 밍밍한 위로보다야
뱃 속에서 온전히 나를 따뜻하게 덮혀주는 밥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런지 친해지려면 밥을 먹는 횟수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밥을 함께 먹으면 먹을수록 정겨움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ㅡ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은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결혼을 테마로 한 에세이) 中 ㅡ 와 같이
먹은 밥의 수와 생활, 혹은 정겨움의 비례한다는 것에 지극히 공감한다.
일인용 밥상과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냉동시켜 둔 삼겹살과 아침에 끓였던 참치김치찌개로 이른 저녁을 먹는다. 딱 서너 숟가락의 밥이 많아 보인다. 덜어두고 먹다 보니 어느새 밥은 줄어들고 남은 서너 숟가락의 밥을 마저 먹는다. 식탐이 생긴 것인지 본래의 양보다 더 많이 먹을 때가 많아졌다. 아무리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플 땐 그건 마음이 허한 것이란다. 그럴 땐 밥은 따뜻하게 양껏 먹어두는 것이 우울을 방지하기에 좋다.
유년시절 외할머니가 낮의 고단함을 보상받으시려는 듯 양푼 한가득 고봉밥을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늘어진 하얀 런닝구를 걸친 할머니의 이마엔 땅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린 나락을 가꾸는 농부의 이마에 맺힌 그것과 닮았다. 한 숟가락의 밥을 뜨고 저녁 드라마를 찬처럼 넋 놓고 보시던 나의 할머니. 그땐 외할머니가 왜 그리 밥을 많이 드시는지 몰랐다.
할머니도 밥을 아무리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던걸까.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 넷을 먹이고 입히고 기르느라 당신의 한 세월을 모두 흘려보낸 할머니의 마음을 내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할머니의 유일한 낙이었던 드라마를 손녀인 내가 당신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밥은 따뜻하게 양껏 먹어두는 것이다.
어린 나락에 뚝 떨어진 농부의 땀방울이 가을이 되면 나락을 황금빛 누렇게 물들인다. 외할머니의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은 어떤 것들을 물들였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할머니가 젊은 날 흘린 땀, 그중 한방울이라도 나를 위해 뚝 떨어진 것이 있다면... 나락은 농부에게 보답하듯 가을엔 황금빛이 되는데 나를 물들인 할머니의 땀방울에 과연 나는 어떤 보답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나도 황금빛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황금빛이 의미를 일기장에 적어두고 먼저 할머니께 목소리부터 들려 드려야겠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몹시 듣고 싶은 저녁에 밥을 먹다가.
* 지금은 아흔 셋의 나이가 되신 외할머니는 3년 전부터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셨는데, 작년 코로나에 걸리신 후 사경을 헤매셨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완쾌하셨지만, 중증 치매로 넘어간 단계라 현재는 요양원에 모시고 이틀이 멀다 하고 엄마의 극진한 케어를 받고 계신다. 나 역시 이틀이 멀다 하고 통화를 하는데 '할매, 사랑해요.' 하면 '나도 사랑해요' 라고 화답하시는 여전히 귀여운 나의 할머니. 내가 쓴 드라마(내 이름이 메인으로 걸리는)를 보여드리는 그 날까지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