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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Oct 23. 2023

자본주의 신은 밀당을 잘 한다

아일랜드 도착 후 똥줄이 타다, 돈과 인간관계

아일랜드 도착 후, 똥줄이 탄 이유 : 돈과 인간관계.

퇴직금이 입금되지 않는데다 지인에게 빌려준 둔을 떼이게 생겼기 때문.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일에 쓰이면 안 되는 거다.


외 할머니께선 늘 말씀하셨다.

"미정아, 니 뜻대로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줄 아냐? 늘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아일랜드 도착 후 초기 정착 비용을 제외하곤 잡 job을 구해 생활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퇴직금이 약속된 날짜에 입금되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녹록지 않다. 게다가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믿었던 지인에게 빌려준 육십만 원가량을 못 받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돈이 없을 때 얼마나 사람이 비참해지는지.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신념이 무너질 때 내면에서 그래도 믿어야 한다, 혹은 그렇게 속고도 사람을 믿느냐는 두 자아의 충돌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이 엿보이는 일기를 적었다.


내 인생은 항상 왜 이렇게 궁핍한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고, 즐겨야 할 이때에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또 깊은 가난의 늪에 빠져 있다. 누구 하나 도와줄 이 없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건 믿었던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일에 쓰이면 안 되는 거잖아. 알면서도 속아주는 이의 마음은 물질은 잃어버릴지언정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인 까닭이다. 혹여나 그 사람이 말 못 할 사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와 바보스러움. 결국,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믿음에 보답한다는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뢰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골몰히 생각할수록 내면에서 상반된 자아가 서로 충돌하며 나를 혼돈 속에 빠트리고 있다. 과연 내가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들 사이에서 나는 얼마나 더 헤매야 진실로 내가 믿어야 할 것들을 가늠해낼 수 있을까. 여전히 여려운 숙제다.


힘들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사람이 참, 비루해진다. 


몇 푼 안 되는 물질로 내면에서 충돌하는 자아를 볼 때마다, 참 그렇다. 이런 게 과연 올바른 관계는 아닐 텐데. . 그냥 놓아버리느냐 끝까지 믿어주느냐는 문제 앞에서 내면의 상반된 자아가 충돌하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 관계의 피로함을 느끼고 내 영혼은 말라가고 있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사진 속 파먹다가 만 케이크처럼 점점 무너지는 관계 속에서 믿음을 빌미로 나는 착한 가면 놀이를 하고 있다. 정작 내 영혼은 피폐해지고 하루하루 말라 가고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가장 두려웠던 건 나의 확고한 믿음이 실망으로 바뀌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거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만 저 옆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양초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후하고 불면 쉬이 꺼져 버리는 작은 희망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나는 또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제일 급한 건 job을 구해야 한다. 

정신 차리자. 배고픈 거, 먹고 싶은 것도 아끼고, 이제 job 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자.


그리고 글 쓰자. 겉멋이 들어간 글 말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글을 쓰자. 

지금 이 순간, 비루한 기분과 비애로 움을 글로 승화시켜 보자.


사람은 믿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내면의 여러 자아들이 아우성치는 오늘은 아일랜드 도착 후 돈과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을 이렇게나마 토로한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응달 아래 핀 꽃처럼 바람 불면 쉬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응달엔 볕이 잘 들지 않는다. 마치 녹록하지 않은 삶과 같다. 하루 종일 보슬비가 내린다. 독재정부를 향한 학생과 시민의 민주항쟁이 시작된 달이자, 천박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월호 대참사가 있던 달이기도 하다. 유독 사월을 잔인하다고 부르는 이유, 알 것 같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라는 노랫말처럼 서글퍼지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하루에도 열일곱 가지 마음과 나를 투영시키는 여러 노래들이 마음을 교차하는, 잔인한 사월. 내게도 다시 봄날이 오긴 할는지, 이런 생각들은 일시 정지시켜 놓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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