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기[憶起] #3. 날씨

#3. 흐린 날의 기억, 더럽게 서툰 이별

by 드작 Mulgogi

십 년 전. 2010년. 이른 봄. 3월. 흐린 날의 기억. 잿빛 하늘.

지방의 소도시로 향하는 버스. 레이첼 야마가타, Be Be Your Love.


매년 이맘때쯤. 공기에 물기가 축축하게 베어든 날씨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억 기[憶起]다.

그중 날씨에 대해 2년 전(2018년, 3월)에 임시 저장한 글에 덧붙여 맺음을 짓는다.




오늘의 날씨. 그러니까 흐리고, 공기에 물기가 축축하게 녹아든 날씨.


십 년 전이다. 그 날 나는 버스를 타고 지방의 소도시로 향했다. 바로 전 날. 그가 전화로 이별을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달콤했던 사랑 후, 예고 없는 이별은 충격적이었다.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은 나는 그에게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는 이미 전화 통화로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나는 막무가내로 그의 본가가 있는 도시로 향했다.


그 날, 아침. 흐린 날씨가 꼭 오늘과 같다. 공기에 물기가 촉촉 묻어있는. 귓가엔 레이첼 야마가타 Rachael Yamagata의 Be Be Your Love가 내려 앉았다. 아마 이 노래를 백 번은 넘게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그즈음 읽던 책이 <꿈꾸는 다락방> 이었다. 이별하러 가는 여자의 머릿속이 자기계발서라니 엉뚱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러니까 정말 간절했다. 머릿속으로 책 속에 나왔던 VD(Vivid Dream)=Reality 라는 공식을 수도 없이 되새겼다. 상상하면 정말 현실이 된다는 그 공식을.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게 예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과도 같았다.


운동선수들이 곧잘 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것도 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이런 것이었다. 첫째. 그를 만나면 환하게 웃을 것. 아이처럼 굴지 말 것. 어른처럼 그의 결정을 존중할 것. 그리고 마지막 대화를 마치면, 그와 마지막 이별을 잘 마무리할 것. 뭐, 대충 이런 것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스물여섯의 그는 더럽게도 이별에 서툴렀다.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하다, 결국 나의 고집에 눌려 마지못해 그가 사는 도시의 버스터미널까지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이별에 서툰 것엔 틀림없는데, 여전히 나를 사랑했던 것임에도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헤어진 여자가 서울에서 온다고 버스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올 리는 없으니까.


만나자마자 그는 날카롭게 치켜뜬 눈으로 작정하고 상처 주려는 사람처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에도 정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송곳으로 마음을 쿡쿡 찌르듯 아팠다. 칼에 베인 손에 구태여 소금까지 뿌리며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려는 사람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도 파고들어 아팠다.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듯 사랑과 이별을 택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니까,

이별을 먼저 고하는 사람이라 해서 결코 상처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이별에 있어 하나마나 한 질문인 “이유가 뭐야?”라고 운을 뗐다. 그는 “사람,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어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나의 얼굴에 대고, 꼭 이유가 필요해 보이는 내게 “아, 얼굴이요. 얼굴이 보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생각하니 쓰레기다. 그런데 지금에 생각하면, 앞서 계속 말했듯. 그것 일종의 위악이었다. 정을 떼기 위해, 차갑게 연기하는 위악. 왜냐하면 말은 쓰레기처럼 내뱉는데, 날카로운 눈빛 속에 그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이별에 더럽게 서툰 그는 연기도 더럽게 못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그가 치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향해 쏘아보지만, 그건 모두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걸. 그리고 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별에 대처할 시간. 이별의 유예기간 같은.


불현듯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이후 나는 큰집과 외할머니의 집을 번갈아 오가며 여러 사람의 손에 위탁되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가 최초로 본 생물체를 어미로 여기며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엄마를 대신할 애정의 대상을 여러 명 거쳐야 했고, 한때 소중하게 애정을 쏟은 대상에게 정을 붙일만하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겪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마음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이별하는 일이다.


내게는 아마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일.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어린아이가 부모의 이혼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다. 그저 일방적인 이별 통보와 다름없는 유년의 아픔과 현재 그가 택한 이별의 방식이 내게는 별반 다를 게 없게 느껴졌다.


나는 버스에서 떠올린 이미지 트레이닝처럼 아이처럼 떼쓰지 않으면서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대신 그에게 부탁했다. 내가 이별에 대처할 단 며칠의 시간이라도 달라고. 유년시절 부모님의 일방적 통보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가 싫었기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그와의 이별에 대처할 시간이 '이별의 유예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철없는 나의 애원에 그는 마지못해 그러겠노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별의 유예기간 끝에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먼저 이별 통보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 그는 다짐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한다면 서로 아킬레스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서로의 방어기제를 알아차리고 세심하게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는 걸.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고맙게도 그는 그 약속은 잘 지켜주었다.

그래서 흐린 날엔 어김없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