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I

바람(Wind)이 되고 싶은 바람(Hope)

by 드작 Mulgogi

바람이 불면, 햇살에 툭툭 부서지는 나뭇잎 그림자처럼 마음이 일렁인다. 때론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애인의 손결처럼. 때론 가슴속 한구석이 뻥 뚫린 듯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바람은 불어온다. 가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게 느껴지는데, 그건 아마도 한 계절이 또 흘렀다는 뜻이고, 삶의 좌표에 나라는 사람의 인생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몇 해 전, 필자가 유럽의 서쪽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일 년 동안 살았을 때.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지는 장소가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 다른 하나는 클리프스 오브 모허(Cliffs of Moher)이다. 두 곳 모두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그에 얽힌 일화이다.


1. 바람(Wind)이 되고 싶은 바람(Hope)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는 아일랜드 거인 파마콜이 바다 건너에 사는 적을 무찌르러 가기 위해 만든 길이라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대자연이 주는 웅장미 앞에 고개를 숙이며 가장 쉬운 트레킹 코스를 걷다가,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순간 ‘길은 여기서 끝나다. 길은 다시 시작된다.’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길 위에 서면 괜스레 결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길의 끝에서 일행과 나는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절벽 위 길이 없는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였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금 더 멋진 풍광을 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었을까. 모험심에 이끌려 우리는 가파른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갔고, 세찬 바람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만한 평평한 곳에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 깎은 듯한 절경 위로 하얀 새가 시원스레 비상해 보였고, 일행은 대뜸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를 했다.


“누나, 저는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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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박장대소하고 말았는데. 다시금 그 말을 되새겨 보니, 지난날 나 역시 그토록 바람이 되고 싶었던 날이 떠올라 웃기를 멈추고, “그럼,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왜 새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저렇게 날아다니면......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보고 말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친구도 나도. 한국이란 일상을 벗어나 이곳 아일랜드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또 다른 자유에의 갈망이 있는 것이다.


생각한다. 바람이 왜 그리 좋은지에 대하여. 천천히 눈을 감고 바람이 나의 살갗을 감싸는 그 순간을 다시금 느껴 본다. 나를 감싼 바람이 나를 대신하여 저 멀리멀리 자유롭게 날아가 줄 것만 같다. 시원하게 바람 속을 유영한다면, 나를 묶고 있는 속박 속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


동공엔 늘 자유로 가득 찬 그런 서글서글한 바람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는 바람(Wind)이 되고 싶은 나의 바람(Hope)이다. 그 바람결에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해가며, 자유에의 의지로 한 발짝 더 다가선 채. 묵묵히 내 가야 할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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