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Hope)을 불어넣는(Blowing) 바람(Wind)
2. 희망(Hope)을 불어넣는(Blowing) 바람(Wind)
하루는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절벽으로 유명한 클리프스 오브 모허(Cliffs of Moher)에 다녀왔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정도 달려 골웨이(Galway)를 지나 오후 두 시 무렵에 도착했다. 대서양 위에 조각처럼 깎인 절벽과 탁 트인 대자연의 광경을 본 순간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고 '우아'라는 감탄만 연발했다.
바람은 또 어찌나 세차게 불어닥치는지 코트를 여미지 않으면 코트 옆 주머니 속의 핸드폰마저 날아갈 기세였다. 실로 바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관광객 중에 넘어지거나 다치기도 했고 나 역시 바람에 비틀거리며 손바닥에 상처가 났다. 우스갯소리로 이곳의 자살은 자살이 아닌 미필적 바람에 의한 타살이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마무리했다고 하는데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어떤 삶의 절망을 가지고 이곳까지 올라 죽음을 생각을 했을는지는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쉬이 알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나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위 절벽 길을 거센 바람을 막으며 한발 한발 내딛을수록 삶에 대한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에 깎은 듯 우뚝 솟은 절벽 위에 나는 두 발로 당당히 서있지 않은가. 태양은 나의 머리 위에 쏟아지고 새들은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가슴속에서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응어리도 새롭게 태어나 살고 싶어 지는 뭉클함으로 피어오르는 적어도 내게는 그런 광경이었음에 분명했다.
미필적 바람에 의한 타살, 바람은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된 개인과 계층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그리고 사회가 무심히도 던져 댄 돌덩이 같은 것이지 않을까, 하고 상념에 빠졌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게 더 아픈 상처이든 덜 아픈 상처이든 당사자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그래도 또 이만큼 더 살아지는 건 자신의 아픈 상처를 잘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상처 위에 손을 얹고 덧나지 않도록 호하고 따스한 마음을 불어 주기(Blowing) 때문이지 않을까. 실제로 바람(Wind)은 고대 게르만어 windaz (Blowing)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다른 바람(Hope)은 고대 르완다어 hoberana에서 기원한 것으로 부둥켜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고 바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상처투성이지만 서툰 손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줄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내가 부둥켜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이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