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찰보리 빵 "모꼬? 혹시 이기 폭탄아이가?"
아일랜드로 오기 직전까지 몸담았던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예쁘진ㅡ우린 별명을 지어 부르기를 좋아한다 ㅡ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예쁘진 : 빵 미정! 할머니 댁 주소 좀 불러봐. 너가 요전에 할머니 준다고 자주 사던 찰 보리빵! 우리 집에 보냈는데 우리 엄마, 아빠도 맛있다고 하셔서. 순식간에 바닥났네. 너 생각도 나고, 너 대신 할머니 댁에 보내줄게.
나 : 아오, 언니 안 그래도 되는데 정말 고마워요. 찰 보리 빵이 맛있다니까요. (히죽)
나를 대신해 할머니까지 챙겨주려는 마음이 어찌나 예쁘고 고마운지. 별명이 달리 예쁘 진이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나는 깜빡하고 할머니께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찰 보리빵 택배 상자가 할머니에게 도착했을 즈음. 아뿔싸. 내가 먼 나라로 간다고 하니, 걱정 많은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 :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뉴스 보니까 외국에서 총살도 나고 무섭드라. 니 밤에 어데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새기 새기 들어가고, 항상 조심 해래이.
그런 할머니에게 날아든 수상한 택배 상자. 그걸 본 할머니는,
할머니 : 이기 모꼬. 미정이가 여 있으면 미정이가 보냈다 캐도, 미정이도 없는데 이기 뭐꼬. 아이고. 무시워라. 요새 뉴스 보니까 하도 이상한 일 많던데....... 혹시 이기 폭탄 아인가.
그렇게 앞집 아주머니에게 달려간 할머니는,
할머니 : 이기 뭔가 함 봐보세요. 내 무시워 죽겠다.
택배 상자를 살펴보던 아주머니는 보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하고 예쁘진에게 전화를 하셨다.
(E/ 띠리리링 띠리링 전화벨 울리는 소리)
예쁘진 : 여보세요.
아주머니 : 거 어딘교? 여 택배 하나가 왔는데 거서 보냈는교?
진 언니 : 아, 네 넵. 저는 미정이 친구인데요. (당황하며) 할머니 드시라고 찰보리빵 보냈어요.
아주머니 : 아 그런교. 잠시만예. 여 할머니 바꿔 드릴께예.
할머니 : 거 누군교?
진 언니 : 아, 네 넵. 저 미정이 친구인데요.
할머니 : 아.... 미정이 친구? 내는 이거 폭탄인 줄 알고 놀랬다 안카나.
진 언니 : (웃으며) 그거 폭탄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하루 늦게 할머니께 전화드렸더니 찰 보리빵에 관한 이런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든일곱의 귀여운 할머니와 나를 대신해 우리 할머니까지 챙겨준 진 언니의 마음이 나를 웃게 한다.
아침엔 엄마와 통화를 했고, 동생들과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또 며칠 전에는 뭐 필요한 거 없느냐며 택배를 보내주겠다는 친구들과 내가 힘들만하면 한 번씩 안부를 전해 “잘 지내니? 별일 없지?” 하며 위안이 되는 지인들이 있다.
이곳에서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서 요즘엔 웃는 일이 많다. 히히. 헤헤. 하하. 헤죽헤죽. 유치하지만 장난치는 일이 잦고, 하루하루 모두 감사할 일이다. 나를 강박처럼 주눅 들게 하는 일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더 많이 떠올리면 된다.
감사함이 창을 통과하여 들어와 사르르 마음에 앉는 오후,
볕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