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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May 19. 201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_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늘 예년에 쓴 일기를 보다가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책의 글을 발췌해둔 걸 다시 읽었다. 늘, 하는 질문이긴 하지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최근 블로그 덧글로 다시 한번 질문을 받고 보니, 릴케가 해 준 말을 더욱 새겨야지 싶다.


1. 당신은 당신의 눈길을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2.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3.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4. 당신이"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요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5. 그런 다음 자연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마치 이 세상의 맨 처음 사람처럼 말해보십시오.


6.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과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묘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7.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8.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10.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고, 당신의 고독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내면으로의 전향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의 이 같은 침 당으로부터 시가 흘러나오게 되면,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 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 고등 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 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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