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과 블랙홀

by 여여

변명은 비겁할 수밖에

전하지 못한 말은 이미 지나간 시간인지,

묻어둔 단어인지, 어차피 자라지 못할 썩은 씨앗인지

무덤을 들춰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으로

나는 작은 블랙홀을 기대한다.


애초에 우리는,

그러니까 태초의 지구에서부터 우리는,

결합과 분열을 반복하다가

나눠지고 있는 세계의 어느 지점에서

만난 것일 뿐인데,


마치 이 세계가 끝인 듯, 영원인 듯,

지평의 끝이라고 깃발을 꽂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 부둥켜안고

알지 못하는 진실과 진심을 모두 담은 키스를 하고

결국 작은 변명이 하나 남았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전하지 못한 문장 몇 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이 모든 변명을 전달할 방법이

작은 블랙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