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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y 17. 2020

시작

수고했어, 오늘도

침대에 누우면 참고 있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고 편두통이 있는 한쪽 골이 찡하게 당겨오는 날이 있다. 막내 책 읽어주기까지 마치고 마지막 미션인 재우기를 위해 눕힌 온몸이 하루의 고단함을 되새김해 주길래, "Anne! 오늘도 수고했어!" 하며 스스로 격려했다. 옆에 누워 있던 막내 녀석이 "엄마 Anne한테 이야기한 거야? 왜 한 거야?" 묻는다. "응, 엄마, 오늘 하루 수고해서 스스로 칭찬해 주는 거야." 잠깐 사이를 두고 조용하던 녀석이 "Marbin! 고생했어!" 하는 것이다. 픽, 하고 웃음이 나서 "니가 뭘 그렇게 고생했냐?" 하니 별 대답 없이 자기도 막 웃는다. 그렇게 하루의 피로감을 씻는다. 수고 대신 고생이라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건가?




대환장파티를 하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결국엔 애들한테 "올라가라"를 수 없이 말하고 겨우 조금 진정된 시간을 가진다. 생각해 보면 아들 셋은 과한 거 아닌가 싶다. 중학교 때까지 늘 깨끗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가만가만히 무언가 하곤 하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완벽주의자셨는데, 본인의 역할인 주부의 일을 아주 정확하고 철저하게 쉬지 않고 해 내셨다. 끼니를 대충 때운 적은 거의 없었고 항상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 잡힌 식탁을 받았다. 옷은 항상 새 옷만큼이나 깨끗했고 옷장 속에 들어있는 자태는 훈련소에서 군기가 바짝 군인만큼이나 각이 잡혀 있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완벽하게 조성된 환경은 사라졌지만 내게 속한 공간만이라도 오래 길들여진 고요함과 쾌적함으로 꾸미려 해왔다. 헌데 아들 셋이 웬 말인가, 고요함은 커녕 고막이 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고성이 그들의 놀이 방식인 데다가 가족 수에 비례해 치워도 치워도 쾌적해지지 않는 정글과 같은 집을 치우다 '아, 나는 이 무지막지한 엔트로피의 세계와 투쟁하고 있는 건가!' 하며 한탄한다. '나의 공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엉기고 붙는 진한 애정이 흐르는 가족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 나선 개인의 공간이 겨우 이 온라인 상인데.. 여기도 온통 가족들 얘기라니..
하하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꺄르르 한 번 웃고, 오늘도 마무리 글도 급마무리.


엄마 돕고 있는거 맞지, Mar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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