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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Jul 28. 2020

잘츠부르크로 가는 길

엄마가 온다! 이민 온 지 100일도 안됐는데...

하나뿐인 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셋을 한꺼번에 이역만리로 보내야 하는 엄마는 겉으론 응원과 격려를 보내셨지만 슬픔과 서운함을 그리 잘 숨기지는 못하셨다. 엄마야 워낙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감정도 풍부하셔서 그러리라 예상했지만, 아빠마저 갑작스러운 이별에 서름하셨다. 외동으로 태어난 게 내 의지는 아니지만 덩그러니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난다 생각하니 나 역시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다간 내가 죽든, 진국씨가 죽든 할 것 같은 위기감이 있었고, 우리 가족에게 이민은 다른 삶을 열 수 있는 열쇠였다. 부모님도 우리 상황과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셔서 말리진 못하고 서운함을 축복으로 대신하려 하셨던 것 같다.


처음 한 달은 유치원 다니던 애, 어린이집 다니던 애, 원래 집에 있던 애 이렇게 셋을 죄 집에서 데리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아 냄비로 밥을 끓이고 익숙지 않아 어설픈 장보기로 매끼를 챙겨야 했다. 장난감도 책도 없이 택배 박스와 필기구 몇 개로 아이들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으로 하루를 채웠다. 미리 온 남편이 인터넷 연결을 해 두어(보통 독일에서는 인터넷 신청 후 4주는 지나야 연결을 해 준다) 미디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 인기작이었던 [냉장고 나라 코코몽]과 [최고다, 호기심 딱지!]는 일과 중 육아로부터 자유를 주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독일에 도착한 것은 2월 초, 다행히도 겨울은 끝자락에 걸려 있었고, 봄이 밀려들고 있었다. 독일의 기나긴 겨울은 맛보기로 지나가고 예상보다 훨씬 날이 좋았다.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서머타임(Sommerzeit)이 시작되자 하루가 길어졌다. 나인 투 식스, 일과에 길들어 있던 한국인들은 아침형 독일인 시간표를 맞추는 것부터 적응해야 했는데, 저녁에 해도 안 지니 하루가 우주처럼 팽창했다.

공식 의상 내복 입고 매일 심심하고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민트, 쪼꼬, 마빈

그리고 4월.  

April, April, der weiß nicht, was er will(4월, 4월, 너도 모른다, 네가 뭘 원하는지! - 의역입니다)

밤마다 '태풍인가?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아침이 오면 언제 바람이나 불었냐는 듯 새소리가 알람을 대신했다. 해가 쨍쨍 나다가 갑자기 후두두둑 우박이 떨어졌고(우박이 이렇게 흔해도 되는 건가), 심지어 눈이 내렸다. 비바람이 수시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정도는 애교였다. 사람들은 반소매 옷을 꺼내 입었다가도 금방 다시 겨울 외투를 꺼내 입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3개월을 정신없이 보내는 중에 엄마가 항공권을 끊었다고 했다!


(좌)"형아, 심심하다." "아저씨 구경이나 하자." (우) 봄 눈

남편과 나는 헛웃음을 웃었다. 금방 오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금방일 줄은 정말 몰랐다. 당혹스러웠지만 조금 더 있다 오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열 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오시는 부모님을 집에서만 모시는 것은 서로에게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기에 급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다. 행선지는 이 곳에서 가장 가깝고 만만한 외국인 오스트리아 그중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도시 내 이동거리가 짧은 잘츠부르크, 그리고 엄마의 로망 프라하. 2박 3일 안에 소금광산, Untersberg 케이블카, 잘츠부르크 시내를 돌고 프라하까지 가는 걸로 빡빡하게 욱여넣은 일정이었다. 남편도 나도 여행 다니며 여유롭게 살아 본 적이 별로 없었고, 그런 삶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나름으론 여행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데 이제와 일정표를 보니 그때의 난리 법석의 이유가 나온다. 여행 계획에 온통 당시 막 돌을 지난 막내 준비물과 아이들 간식 위주의 식단만 꽉 들어차 있다. 이러니 여행이 모험이 될 수밖에...



유럽에서 처음 국경을 넘는 설레는 마음보다 피로감이 우선했다. 몰려오는 피로를 어쩌지 못하고 제일 뒷 좌석에서 잠들어 있는데 술렁이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이야 공짜였지만,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는 비넷(vignette)이라는 표를 사서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야 한다. 열흘, 두 달, 일 년 단위로 금액을 지불하고 산 표를 차 앞 유리 안쪽에 붙일 수 있도록 되어있다. 고작 이틀에 열흘 치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부터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벌금보다는 나을 터였다. 이 곳의 벌금은 법을 안 지킬 수 없는 선으로 책정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리 여행 초보자여도 그 정도 정보는 습득했고, 가는 길에 비넷 판다는 표시가 있는 휴게소에서 구매까지 완료했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자마자 경찰이 차를 세웠다. 비넷이 없다는 이유였다. 남편이 잘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그냥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차에 붙이지만 않았을 뿐 가지고 있다며 비넷을 보여줬지만, 비넷 뒤에는 오스트리아어(독일어)와 영어로 붙여야만 효력이 발생한다는 경고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어디에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결국 열흘 치 비넷 비용과 벌금을 동시에 지불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도록 서로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첫 번째 행선지는 소금광산이었다. 교통체증은 예상치 못했는데 목요일 오전부터 길엔 차가 많았다. 뮌헨 시내를 빠져나가야 해서 그런 듯했다. 시간이 빠듯해져서 예약을 바꿔야 했다. 당시 외국어 팻치 비활성 상태였던 채로(지금이라고 활성화된 건 아니지만...) 예약시간 변경하는 그 간단한 의사소통에도 진땀이 났다. 그래도 직원은 친절했고, 얼마든지 시간 변경은 가능하다고 했다. 한 번의 난관이 있었지만 알프스를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독일에 사는 몇 개월간 마을 밖을 나가 본 일이 별로 없는 우리 가족의 시선과 서유럽 땅을 처음 밟는 부모님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진심으로 벌금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들이 되었다.

소금광산은 아이들과 함께 체험하기에 알차고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돌을 막 지낸 아기와 함께 하기엔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아직은 스스로 걷기보다 유모차에 실려 다니는 게 더 익숙한 아기였고, 아기띠로 매달려 다니기는 무거운 아이였다. 그래도 어른이 넷이나 있으니 감당할 만했다. 소금 광산에서 어떻게 소금을 채취하는지 직접 소금 광부들이 입는 작업복을 입고 다 같이 체험해 보았는데, 광산 곳곳을 탄광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낮은 공간으로 내려가는 길은 미끄럼틀이고, 소금 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기도 해서 아이들이 영어로 된 설명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나름 흥미를 가지고 참여했다.


즐거움의 무드로 완전히 전환된 가족은 다음 행선지인 운터스베르크(Untersberg)로 향했다. 날은 5월의 화사함으로 부풀었고 아이들은 신이 났고 차는 싱싱 달렸다. 아직은 오래 앉아 있기 힘든 막내를 위해 어른 셋이 온갖 재롱을 부리는데 그것마저 즐거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분위기에 취해 풍경에 반해 가고 가는 데 가는 길이 좀 이상하다. "Autofrei" 어쩐지 차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표지판이 보이고 숲은 점점 깊어지고 자전거 하이커와 등산객만 보인다. 저거 분명 자동차 오지 말라는 소리인 거 같긴 하지만...(최근 독일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자전거전용도로이지만,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다는 표지판이라고 한다. 자유롭게 갈 수는 있지만 목숨은, 본인이 챙기라는 뜻인 가보다.) 확신은 없고 인터넷은 안 잡히고 맵은 자꾸 깊은 산으로 우리를 이끌고 당황한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점점 험해지고 가팔라지는 산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결국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때까지 가서야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는데 삭막한 흙길엔 차가 꼭 끼어 있었다. 핸들을 조금만 잘못 꺾어도 브레이크에 힘을 조금만 덜 줘도 저 아래 절벽으로 떨어질 판국이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차를 돌릴 수도 없었던 터라 남편은 죽더라도 자기만 죽겠다는 심정으로 가족들을 차에서 다 내리게 하고 가파르고 굽이진 흙길을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사막 모래바람 같은 먼지를 일으키면서 생명을 담보로 빠져나왔다. 글로 쓰니 고작 몇 줄이지만 당시 우리 가족은 혹시나 삐끗하면 누구 하나 죽거나 차 한 대를 버려야 하는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양쪽 모두 무사하길 바라며 영원 같은 시간을 기다렸다. 나중에 전한 말이지만 진국씨는 혹시나 차가 미끄러져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 차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구할 것인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겨우 차를 돌릴 수 있는 공간으로 나와 다시 차에 탄 가족들은 모두 진이 쫙 빠진 상태였다. 막내도 분위기를 느낀 건지 얌전하다. 운터스베르크, 뭐 얼마나 좋은 곳이라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갈 일인가. 산길을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했는데도 남편의 땀은 식질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이 미덥지가 않았고 조수석에 앉은 나는 확인을 해보려는데 자꾸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 제대로 가는 건지 마는 건지 불안과 수심에 가득 차 한참을 달리니 목적지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이미 때는 늦은 오후, 남편은 매표소로 달려가 케이블카의 운행시간을 확인하고 잘츠부르크 카드를 구입하고 다시 가족들에게 달려와 다급하게 말했다. "이 시간이 올라가는 마지막 케이블카래요." 배고프다 칭얼 대는 아이들 먹이고 쉬 누이고 기저귀 갈고 흐트러져 있던 가족들은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고 케이블카 타는 곳(Untersberg bahn)으로 애 한 명씩 안고 잡고 뛰었다.



드디어 케이블카에 들어가자 숨 고를 틈도 없이 가족들의 케이블카 입성을 성사시킨 남편은 그제야 긴 숨을 내뱉었다. 케이블카가 점점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자 가족들은 그간의 긴장을 잊고 금세 여행객의 설렘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도 우여곡절 사이로 내내 감탄했던 알프스의 풍경이 점점 실체로 다가오는 경험은 황홀했다. 정상에 딱 올라서니 눈과 구름 콜라보에 싸인 봉우리들이 신비롭고 고혹적이다. 그런데 아까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위기를 지나와서 인지, 애가 많아서 인지, 많이들 그렇게 느끼는지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산길에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다. 저 아래는 따뜻하고 북적이고 이 위는 산산하고 고요하다. 하나의 세상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저쪽 세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쪽에서는 들리고 보였다. 경계를 넘어오며 눈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졌다. 이런 확장이 현실로 내려가서도 유지된다면 아이들처럼 우리도 쑥쑥 자랄지 모를 텐데..


(좌)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우) 그날 우리가 뱅글뱅글 돌았던 길

높은 곳에서 한시름 내려놓고 온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경계를 넘어 잘츠부르크 시내로 들어갔다. 작은 도시에 관광객들까지 가득 들어 있는 공간이라 여행 중인데도 덩달아 분주해지는 기분이었지만 높은 곳의 기운을 잃지 않으려 눈을 감아 보았다. 긴장 설렘 긴장 설렘으로 완급이 아주 쫄깃했던 하루의 마무리는 숙소에서 쉬는 걸로 정했다. 다들 잠든 밤 남편과 나는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며 프라하 일정을 지우는데 긴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첫 경험으로 나쁘지 않았어, 다음엔 더 재밌게 여행할 수 있겠다, 그땐 아이들도 좀 더 커 있겠지.

많은 말들이 맥주 꼴깍 넘기는 소리와 함께 넘어갔다. 다음 날 잘츠부르크 관광은 나름 순조로웠다. 좁은 시내를 돌다 돌다 겨우 찾은 주차공간이 장애인 전용이라 아주 잠깐 사이에 벌금 고지서 하나 더 받기, 모차르트 생가 박물관에서 뛰고 만지고 소리 지르려는 아이들 진정시키기, 좁은 푸니쿨라에 유모차까지 싣고 올라가기, 뛰어다니고 사라지고 배 고프고 목마르고 바로 화장실 가고 싶은 아이들 챙기면서 구경하고 사진 찍기, 그 와중에도 가족사진은 꼭 남기기, 맛집은 한번 쯤 들러서 허겁지겁 먹기, 돌아오는 길에 프라하 일정 빼기는 정말 잘했다고 안도하기.  


이렇게 유럽 초보자의 유럽 기행은 급작스레 서막을 올렸다고 한다.

(우) 어딜 가나 놀이터화 (중) 미라벨 궁전 (좌) 카피텔 광장
(좌, 중) 호엔잘츠부르크에서 내려다 본 잘츠부르크 (우) MARIONETTENMUSEUM SALZBURG Welt der Marionetten (마리오네트 인형극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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