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의 첫 번째 조건이 생기다

무조건 1순위 온돌방

by 나비바늘

"잊어버렸던 기억이 솔솔 나네요. 이런 글 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멋지게 폼도 잡고 더 잘해 줄 걸..."


문경 친구에게 쓴 글을 보냈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작년 12월에 베트남 꾸이년으로 피한 갔다더니 아직도 거기에 있는 모양이다.


그는 생각하면 실행한다.

훌쩍 떠나고 오래 머물다 돌아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날 만큼 자유롭게 산다.

나는 늘 따라 하고 싶은데 생각만 한다.


"친구야 너를 만날 걸 행운으로 여긴다.

문경에서 충분히 잘해주었고 멋졌는데,

내 글솜씨가 시원찮아서 그리 느끼니 미안하이!"


문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다.

전라도 장성, 또 다른 친구 집을 찾아간다.

1년 전 친구들과 하룻밤 잔 적 있는 멋진 집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 집을 짠하고 보여주고 싶어 최대한 말을 아꼈다.


우리와 친구 부부의 만남의 장소는

저번에 내려와 먹어보고 홀딱 반한 '청자연'식당이다.

"이런 곳에 식당이?" 할 정도로

민가에 숨어있는 집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듯

골목은 주차 몸살을 앓아야 한다.


전라도 한정식 맛집,

예약으로 점심만 먹을 수 있는 곳,

안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깔끔한 분위기,

식후에는 공짜로 바깥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차를 우려 주는 공간까지,

집 근처에 있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외식하고픈 그런 곳이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남편들은 동갑내기였고, 밥을 먹으며 담소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나보다 세 살 위인 친구는 웃음소리로 순식간에 주변을 밝게 만드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이라서 남편도 쉽게 스며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친구 집에 당도한 우리 부부는 "우아"를 남발했다.

우리가 온다고 얼마나 쓸고 닦고 정리했을까?

1500평 대지에 감나무는 거의 쫓겨나고, 잔디가 깔린 꽃천지의 정원 속에, 집은 아담하고 정갈하게 남쪽을 향해 앉아있다.

작년과 달리 2년 차에 접어든 집과 정원은 제자리를 잡아, 잡지책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연출했다.

깔끔하게 이발된 잔디, 키 작은 꽃은 앞에, 키 큰 애들은 뒤에, 빨강, 노랑, 흰색의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소리 없는 응원봉을 흔들며 환영했다.


체구가 작은 친구의 강단과 부지런함과 미적 감각이 섞여서 빚어낸 작품이다. 물론 죽이 잘 맞는 배우자의 외조도 녹아난 결과이다.


그리고 집을 구경시켜 주고 하룻밤 재우려고 온돌방에 불을 때 놨단다.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다.

융숭한 저녁식사 대접을 받으며 담소가 이어졌지만

시골의 저녁은 빨리 왔다.

친구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하게 뛰어다녀 일찍 잠든다는 걸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밤 9시밖에 안 됐지만 취침을 위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깜장을 뒤집어쓴 조용한 시골 밤이었다.

뒤뜰의 대나무들은 새로 온 손님이 누군가 순진한 눈으로 창문으로 기웃거렸을 것이고,

낮에 본 고양이도 처마 밑에 웅크리고, 새들도 날개 접고 쉬는 시간이었다.


정갈한 이부자리에 몸을 누이니 가마솥에 들어간 메기처럼 잠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늘 그렇듯 낯선 곳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예민함은 피곤함을 누르지 못했다.

역시 오늘도 남편은 장거리 운전과 초행길에 긴장했다가 풀렸는지 이내 잠들었다.


그렇게 간밤 절절 끓는 구들방에서 뒹굴뒹굴 온몸을 지지고 일어나니 놀라웠다.

내 몸속 나쁜 것들이 몽땅 빠져나간 듯 개운하고 가뿐했다.


바로 이거다.

전원주택의 첫 번째 조건이 떠올랐다.

"무조건 구들이 있는 온돌방!"

남편과 둘이 시선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자연식 아침상을 뚝딱 차려 대접해 주고는, 멋진 집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차에 태워 데리고 다녔다. 아니 이 집보다 더 멋진 집도 있을까 싶은데 많이 보라고 한다. 자기 집도 짓기 전에 수도 없이 답사를 다녀 도움이 됐다면서, 참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유지를 내 마음대로 쓰는 넓은 집,

아기자기한 소품과 꽃이 예쁜 버섯지붕의 토담집,

그리고 편백나무로 유명한 축령산 초입에 멀리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성당 친구 집을 보여 주었다.

탁 트인 풍경과 잘 가꾸어진 정원과 너럭바위가 일품이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사람들

뜻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날 아침까지도 몰랐다.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에서 계속되는 말이 떠오른다.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리고 우연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이다."


맞는 말이다. 그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 성당 친구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은 비켜가지 않았다.


성당 친구는 자기 집을 다 보여준 뒤, 자기 아랫집이 멋지다며 구경 가자고 우리를 이끈다. 모두 3쌍의 부부가 뭉쳐서 대문도 없는 집에 불쑥 들어갔다.


그 집은 잘 지은 집으로 유명하고,

건축 관련 책을 쓰신 작가가 사는 집이란다.

늘 비어 있었는데, 요 며칠 와 있다고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갔던 것이다.

"아, 그래도 되는 사이인가?"

주인도 이런 일 다반사라는 듯 흔쾌히 맞아주셨다.


아담한 정원에 폭 파묻힌 집.

본래는 스님이 환속하여 여인과 살던 집인데, 마음에 들어 샀단다.

툇마루가 있고, 방 두 개,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

최소한의 공간만 가진 목조 주택이었다.

전 주인 스님의 거처답게 방은 천장이 낮고 좁지만 아담했다.

절의 방석 같은 회색 무명천 이불이 방 전체에 두툼히 깔려 있었다.

2층 앞집이 지어지는 바람에 시야가 가린 것 빼고는 운치가 있었다.

주인장은 우리에게 차 대접을 하며

절절 끓고 있는 구들방 아랫목에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만병의 근원은 냉한 데서 온다"

"온돌방에 지지면 병이 싹 다 낫는다."


남편과 나는 거의 약장수 앞에

약을 사기 직전까지 넘어가 있었다. 아니 약을 샀다.


우리 집 선택의 조건은 이제 확고부동했다.

간밤에 온몸으로 검증했고,

이렇게 절절 끓는 방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이론까지 들으니

몸이 다 나은 느낌이어서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성당 친구는 바로 시야를 가리는 문제의 앞집이 민박을 했었는데,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별채에 잠깐 살아봄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고 금방 승낙을 받아내더니 당장 살아 보란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한 달에 50만 원.


그렇게 순식간에 '장성에서 한 달 살기'가 결정되었다.


"그래 한 번 살아보자!"

남편과 또 한 번 일치를 보았다.

다음 주에 오겠다며 바로 입금을 하고, 우리의 남도 여행길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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