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사는 지인 집 나들이
5월은 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겨울을 건너온 땅 위에는
보드랍고 싱그러운 새싹들이
제법 키를 키우고,
꽃들은 대기표를 뽑듯
차례대로 핀다.
꽃 진 자리 허전할까
이내 초록 이파리로 채우고
새들도 분주하게 목소리를 얹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
우리 부부는 전원주택을 사기 전에 답사차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퇴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이미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이다.
30대에 만난 직장 동료였고,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매달 만나는 모임의 절친이었다.
그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는 아니라도 눈빛만 봐도 알아듣고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 파악까지 세분할 수 정도는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직장 동료이고 말 잘 통했던 남자 지인 역시, 문경에 내려가 고향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소식에 들러볼 예정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으며 감정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 자주 회상할수록 끊임없이 각색한다."는 말을 읽은 적 있다.
7년 전의 나의 기억들은 편파적으로 각색되었을 것이다. 떠올리지 못하는 많은 일들은 뇌에서 삭제되고, 느낌만 남아 있는 걸 붙들고 쓰고 있다.
우리는 남도 여행을 계획했다. 한참 치료 중이었던 나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국내 여행으로 눈길을 돌려 일석이조를 노렸다.
늘 시간에 쫓기고 쉬는 날이 거의 없었던 남편의 소원은 좋은 차를 타고 전국을 도는 것이었다.
참 소박한 꿈이었다. 이것 또한 나의 아픔으로 이루어졌으니, 아픔은 뺄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여행의 설렘은 준비부터 시작된다. 4박 5일을 기준으로 옷가지, 세면도구, 먹거리, 충전기, 빼놓지 못하는 태블릿 PC, 그리고 책(웃기지만 들고는 다닌다.)등을 차에 실었다.
드디어 남편의 꿈이 실현되는구나.
최상의 좋은 차는 아니어도, 우리 수준에는 최상인 차를 타고 출발했다. 둘 다 시간은 넘쳐나고 아이들도 반은 독립을 해서 홀가분했다.
5월은 남도로 향할수록 계절의 여왕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달리는 창밖 풍경 못지않게
마음밭에는 새싹이 돋고 꽃이 피었다.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새를 닮았다.
누군가 어려운 부탁을 해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다.
첫 번째 방문지는 문경이다. 남편에게 자주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했던 터라, 얼굴을 본 적은 없어도 익히 알고는 있다.
주소를 찍고 문경에 도착한 그 친구 집은 부모님이 사셨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집다웠다. 이웃집들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인사 나누기는 좋지만, 원주민들의 텃세가 빳빳해 보이는 곳이었다.
누구네 아들이 어떻게 하나 지켜볼 눈빛으로 이 친구 좀 조신했겠다. 슬쩍 웃음이 났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솔직하지만 가볍지 않은 생각을 가진 친구인데, 남편을 보더니 웃음기를 거의 빼고 반겨주었다. 아마 평상시 같았으면 벌써 상대를 서로 제압하려는 농담으로 시작해서 킥킥거렸을 타임인데, 나도 점잖음을 드러내 예의를 갖추고 대했다.
그 친구 집은 특이했다. 대문에 들어서자 텃밭이 집을 마주 보며 일렬로 자리 잡아 벌써 먹거리들이 초록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내에는 침실과 거실, 부엌 위주로 햇빛이 하루 종일 들어오는 방향으로 창문을 고려해 지었고, 외부에는 바깥 활동 후나 동네 마실 오는 사람을 위한 사랑방이 따로 만들져 있다.
틈만 나면 인도, 태국, 베트남 등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나더니 가옥이 그쪽의 모습을 꽤 닮았다. 참고로 불교에 심취해 이미 법명도 있는, 반은 스님이시다. 해볼 것 다 해 보아 해탈했다나?
인천집과 문경집을 오가며, 부인은 주로 인천에 살고 혼자 내려와 기거한다고 했다. 사랑방에는 신발을 신고 그냥 들어가면 된다. 여차하면 드러누울 수 있는 평상 같은 바닥이 있고, 탁자를 중심으로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책과 풍금이 놓여있다. 흥 많은 친구가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불교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친구 말로는 밥 먹고 이곳에 출근한다고 그 언젠가 자랑질했던 곳이다.
이제 방문 목적에 맞게 전원주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쏟아내니, 남편의 몸이 점점 앞으로 쏠리며 귀담아 듣는다. 그리고 여기 와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부동산 친구한테 냅다 전화를 하더니, 매물 나온 집들을 구경 가자 한다.
"을씨구나! 좋지."
친구 차에 냉큼 올라타고 집들을 순례했다.
저 집은 좁고, 저 집은 너무 외지고, 저 집은 허름하고, 저 집은 이웃과 너무 붙었고,
저 집은ᆢ저 집은ᆢ저 집은ᆢ
그렇게 우리의 집 찾기가 시작됐다.
자기의 마음을 사로잡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집에 대한 기준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단골 맛집에 데려가 저녁밥을 사주어 맛나게 먹었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많이 내려 앉았다. 자고 가라는 말을 건넨다. 떠날 걸 알면서 해보는 인사말이다. 인정에서 우러나오고, 듣지 못했으면 섭했을 따뜻한 말이다.
이미 숙소를 예약해 둔 곳이 있었다.
그러더니 작년 초겨울에 말린 시래기를 한 박스 가득 담아 준다. 벌써 가까워진 남편이 넙죽 받아 챙긴다.
"친구야 고맙다. 다음에 우리 집 찾으면 놀러 와."
그리고 STX 리조트로 향했다.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짐을 부리고 사우나에 몸을 맡기니 피곤이 가시고 행복감이 스며들었다.
내일 장성으로 향할 생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운전으로 피곤했는지 남편이 먼저 코를 골며 잠이 들고, 사우나로 노곤해진 나도 스르르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