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건강하세요!"
"별일 없지?"
"언제 밥 한 번 먹자." 등
너무 흔하고 상투적이어서 건성으로 주고받는 말들이다.
안녕하고, 건강하고, 별일 없으니까
대수롭잖게 응대한다.
나 역시 아프기 전까지
외국인을 위한 한글 배우기 회화 편처럼
'의미'보다 '발음"을 먼저 내뱉으며 살았다.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또한 거대한 도시의 작고 연약한 피해자로 살면서, 소외된 그들이 그리워하는 말은 저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들이었다. 작가는 그 말의 뜻을 곱씹으며 저 말들의 따스함을 전했다.
"아프다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다.
아팠기에 얻는 것이 더 많다."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나도 건강할 때는 삶이 무 맛 같이 밋밋해서
늘 이벤트가 없는지 기웃거렸다.
매일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하고 몸을 던져 정신없이 뛰다가
퇴근하면 허둥지둥 집안일을 했었다.
그럴 때 나의 소원은 '나만을 위한' 많은 시간이었다.
건강에 '별일'이 생긴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들과
소소하고 사소한 일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저런 평범한 말들을
연필로 꼭꼭 눌러쓰는 아이처럼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세상에 별일 없는 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별일 없으신지?"
"별일 없으시길, "
"별일 없다. "
사고가 나지도, 아프지도, 걱정거리도 없다는
그 말에 안도하고 평안을 느낀다.
태수의 수필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말한 것처럼 행복은 크고 유난한 것에 있지 않다.
오늘 하루 나쁘지 않으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퇴직 후,
드디어 찾아온 나만의 시간들,
서두르지 않은 아침,
느릿해진 집안일,
약간의 산책,
침대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출근복 대신
잠옷이 제일 좋은 옷으로 자리바꿈 했다.
그리고 무엇을 했을까?
그토록 나만의 시간에 읽고 싶었던 독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지 않았다.
분주히 뛰어나니던 재직 중에도
아침저녁 쉬는 시간 짬짬이 소설을 읽었었다.
그리고 장편을 택한 이유는 맥락이 이어져서
뒤가 궁금하니 읽지 않을 수 없게
스스로를 가둔 독서였다.
좋은 습관이라 치부했다.
그런데 갑자기 턱 하고 주어진 시간들
주체할 수 없이 풍족한 시간들
달콤하고 유혹적인 시간들
책보다 더 눈을 붙잡는 것들이 넘쳐났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영화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드라마 시리즈들.
퇴직금으로 장만한 태블릿 PC는
어느새 수족의 일부가 되어갔다.
16부작 이상을 보면 일상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불규칙했다.
이러다 폐인이 되지 싶어 바깥으로 나가면 발걸음은 인근 백화점으로 향했다.
책을 놓은 시간들,
그 많은 영상들로 머릿속은 줄거리가 엉켜 와글거리는데,
왜 가슴은 허전하고 머리는 텅 빈 느낌이 들까? 뭔가를 했다는 느낌보다 뭔가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새로 생긴 습관이 굳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건강해졌나?'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었다.
'어떻게 하지?'
그리고 남편한테 제안했다.
"우리 시골에 가서 살아보자. "
새로운 환경을 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기다릴 것 같았다.
책을 읽기 위해 떠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영상들을 멀리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았다.
우선 건강해지고,
자존감을 키우는 삶.
그렇게 우리는
제2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