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도 없었던 우연한 일
여행이나 인생이나
어차피 알 수 없다는 것
많은 것들이 그저 우연으로 결정된다.
매사에 큰 틀에서 즉흥적인 나,
시간 단위로 계획적인 남편과 40년을 살다 보면, 서로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며 마찰을 피하는 생존 전략이 생기기 마련이다.
계획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세상은 아니라서 늘 성공과 실패도 반타작임을 안다.
그런데 계획한 적도 없는 전라도 장성에서 한 달 살기는 나의 즉흥적인 선택에, 남편이 얼떨결에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조심성 많은 남편이 내게 건네는 노파심을 긍정으로 이끌기까지는 나의 숨은 인내가 필요했다.
밋밋했던 무 맛 같았던 우리 삶에
무채를 만들어 양념을 버무려도 별미일 것이라고 담백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 살기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이부자리, 냄비, 프라이팬, 밥그릇, 국그릇, 접시 몇 개, 수저, 휴대용 인덕션, 세면도구, 옷가지 등등
승용차가 짜부라질 만큼 가득 싣고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340km가 넘는 거리지만 평일의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었다.
기대와 설렘,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는지 살짝 걱정도 하면서 둘은 재잘거리다가 침묵하곤 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장성이 가까워지자 강원도 두메산골에나 있을 법한 웅장한 산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숙소도 축령산 초입 부분이라서 평안하고 조용한 시골 경치에 잘 왔다 싶은데, 남편은 무사히 도착했구나 싶은 모양이었다. 좀 멀긴 멀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도 몇 집 있고, 전원주택도 민가도 몇 채 보였다.
때마침 하얀 꽃잎에 노란 꽃심의 마가렛꽃이 탐스럽게 길가에 사열하듯 지천에 피어 있었다. 샤스타데이지만큼이나 흔한 꽃이다. 생명력 강한 꽃씨가 제 세상 만나 귀한 대접도 못 받고 피어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비싸게 사야 하는 꽃이다.
장성은 집집마다 주인의 취향을 담은 꽃을 피웠다.
우리 숙소도 주인의 취향저격인 듯 여러 그루의 반송들 아래로 송엽국이 꽃잔디처럼 번식하여 늘어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별채는 등산객들이 올려다볼 수 있는 길거리 옆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거실 겸 주방, 침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투룸의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거실 창문으로 축령산 싱그러운 나무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가지고 온 짐을 부리고, 식탁 겸 탁자에 감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천을 까니까 금세 우리의 색깔이 입혀졌다.
그리고 먹거리를 사러 15분 거리에 있는 마트와 상점들이 있는 중심지로 향했다.
농협하나로마트, 식자재마트는 자주 드나들 곳이었다.
싱싱하고 풍족한 농산물과 과일, 이곳 생활에 적합한 공산품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장바구니에 부식 재료를 챙겨 담았다.
낯선 곳이 차츰 눈에 익숙한 곳으로 변해갔다.
윗집 성당 친구가 이사 잘했나 들러보면서 머윗대 나물을 좀 무쳤다며 먹어 보라고 가져왔다. 서울에서 느껴보지 못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운 집주인 선남 씨,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컸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몸도 아프고 고향 생각이 나서 여기에 집을 지었고, 나올 생각이라고 했다. 아직도 아들 둘은 미국에 살고 있고, 잠시 한국에 나와 있지만, 정리도 할 겸 이번 달 말일에는 다시 미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행동은 나를 변화시켰다.
"선한 영향력은 전파된다."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생각난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자신의 어머니가 사생아인 자신을 낳게 하고, 돌봐준 집주인의 인정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면서 발견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안나를 불이익을 감수하며 용기를 내어 구해준다는 얘기이다.
도움 받은 안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몰아오듯, 내 가슴도 잔잔한 물결처럼 선남 씨의 선행을 따르고 싶었다는 얘기이다.
선남 씨는 본채에 살고 있다가 우리가 나타나니 그때부터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냄비, 그릇을 챙겨 오고 새로 지은 밥이라며 놋그릇에 담는 것이 몸에 좋다고 가득 담아 날랐다.
불편한 것 없는지 살피며 뒤뜰에 막 봉오리 진 꾸지뽕나무, 엄나무순을 따먹으라 하는데 따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나는 손을 쉽게 뻗치지는 않았다.
다음날에는 야산에 번진 머위를 남편에게 따라며 가르쳐주고, 우리는 지천에 키가 크기 시작하는 쑥을 뜯으러 다녔다. 몸에 좋은 쑥떡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쑥은 쪼그리고 앉아 캐는 것인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줄기를 뚝뚝 꺾는 것이었다. 음력 5월 5일 단오 전까지는 억세지 않아 뜯을 수 있다고 했다. 처음 알게 된 상식이다.
쑥이 무조건 많아야 한다며 재빠른 솜씨로 시범을 보였다. 금방이라도 뱀이 기어 나올 듯해서 발길을 조심히 딛느라 내 바구니는 초라한데, 선남 씨는 어느새 꾹꾹 눌러 넘쳐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야외 수도에서 널따란 다라와 소쿠리에 쑥을 다듬고 씻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더니 방앗간에 전화를 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건강식으로 현미와 쑥이 들어간 인절미를 맞추고 다음날 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집에 있다며 다 가지란다. 맛이라도 보라며 주니 고맙단다.
세상에나! 내 일처럼 쑥을 뜯고 씻고, 시간과 노동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내어주며 베풀다니ᆢᆢᆢ.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었다.
그녀의 이처럼 사소한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게 다가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