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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07. 2023

제가 감히 상처받은 그 마음을 보듬어도 될까요

혼자라고 생각말기. 저 멀리 내가 있어요.

한참 정신과 폐쇄병동을 실습하며 만났던 환자가 생각나고 그리웠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가면을  인격,  페르소나를 안고 살아가는  같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자아의 무의식 측면에 존재하는  다른 ,   쪽에서  따라다니는 그림자라도 존재하는 걸까. 정신병원 환자들은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두운 인격의 페르소나가 밖으로 표출될 만큼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아픈 것도 모자라 마음까지 아픈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미어진다.


그 여자 환자는 내가 2주 동안 정신과 소논문을 쓰려 공부하기 위해 만났던 나에겐 아주 각별한 환자였다. 평일동안 환자를 만나고 주말에 집에 있을 땐 환자가 병원에서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맴돌았다.

햇살이 참 좋은 날엔 정신병원 안의 그들과 평소처럼 대화하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읽어주었지만 때로는 그들의 아픈 상처를 너무 깊이 꺼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혹여나 그들이 감추고 싶거나 밖으로 내비추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존재할 수도 있으리라.


한참이나 온도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한 도시의 눈이 쌓인 정신병원 건물은 삭막하리만큼 어두운 공기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활기차고 밝았었다. 정신병원 출입증을 손에 들고 출근하는 길은 늘 나를 설렘 가득하게 해주곤 했었다. 다만 그게 어느 날은 조금 아픈 설렘 이었던 것 같다. 눈을 녹일 만큼 따스하게 비춰오는 겨울 볕 사이로 산책을 하는 낮 시간이 되면 우리는 늘 너무나 경쾌하게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나는 너무나 고마웠다. 감히 내가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에 따라 적절한 이야기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지금보다 한 참 어렸던 그 때 당시 나에겐 어쩌면 큰 기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땐 꼭 아무 걱정도 없는 하얀 동화 속 예쁜 꽃나무 그늘 아래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래에 꼭 그녀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답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서였을까.


되려 그땐 내가 환자들 덕분에 위로를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중환자실이나 병동 등의 다른 파트 실습과는 다르게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갔다. 상대적으로 느껴졌던 빠른 시간, 그만큼 환자에게 더 애정이 깊었던 걸까. 정신병원 마지막 출근 전날 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휘감겨 소용돌이쳤다. 그녀가 부디 내가 없는 앞으로의 미래의 날에도 울지말고 웃어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

그녀에게


“오늘은 엄마가 온다고 했으니 전 잠깐 병원 근처로 외출해요. 우리 다음 주에 만나요”

그 다음 주에 만나자는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해요.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서도 얻어가는 것이 무수히 많았어요. 그저 단순히 졸업과 커리큘럽을 위한 실습으로 생각했다면 나 역시 이렇게 수년이 지나도 당신이 생각날리는 없겠지요. 언뜻 언뜻 그 때의 예쁜 웃음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환하게 웃는 얼굴 사이로 나에게 수줍게 장난을 걸던 모습도 생각이 납니다. 어둡고 아픈 내면을 감추려 애써 웃으려 했던 것도 어쩌면 저는 알아요. 슬프거나 외로운 마음을 웃음에 투영시키려 했던 것도 어쩌면 저는 알아요. 그럴 땐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파 오래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이 꼭 그 속에 고여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렇게나마 웃음 지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럴 리 없겠지만 아주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있다면 그 때 나에게 털어놓았던 수많은 마음 속 응어리들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나에게만 털어 놓는다고 했을 때 저는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신뢰하고 우린 커다란 라포 형성까지 되었던 거니까요.

전 감히 그렇게 믿고 있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2주의 시간 속에 그보다 더 큰 각별한 관계가 어딨겠어요.


그 스물 넷 저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당신에게 건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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