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8화 구멍가게와 등굣길의 첫 친구들

우리 동네엔 유일한 구멍가게가 있었다.

집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그 바로 앞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거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때로는 엄마 심부름, 때로는 몰래 눈요기하러 가기도 했던 곳.


그날도 아침 일찍, 아빠의 기침 소리에 눈을 떴다.

언니는 이미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간 뒤였다.

중학생인 언니는 늘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어제 만났던 새 친구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괜히 일찍부터 부스스 기지개를 켰다.


아빠의 지도 아래 세수하고, 이 닦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엄마는 아침상을 준비하셨다.


한상 가득 밥상이 들어오고,

우리는 늘 그랬듯 부모님이 먼저 앉으실 때까지 기다렸다.

동생과 장난도 치면서.


엄마는 밥을 먹고 나면 꿀에 탄 수삼을

우리 입에 한 숟갈씩 떠먹여 주셨다.

나는 꿀만 먹고 싶었지만, 감시가 심해서 꼭 수삼도 함께 씹어야 했다.


가끔 억지로 삼키지 않아 혼난 적도 있었지만

그 순간도 왠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밥을 먹고 나면 아빠가 구멍가게 옆 마을회관까지 데려다주셨다.

"내일부터는 혼자 올라가야 한다"며 말이다.


그날 마을회관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동네 언니, 오빠들이 모두 줄을 서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내 또래 여자아이들이 네 명이나 있었고

남자아이들도 보였다.

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다니.


어떤 오빠 하나가 앞에서 "줄 서" 하며 나를 손짓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처음으로 '앞으로 나란히'를 해보았다.


나는 미선이라는 아이 옆에 섰다.

미선이는 아랫동네에서 왔다고 했고,

두 살 많은 언니와 함께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 언니가 부러워서 자꾸 쳐다봤다.

나도 언니가 있었지만, 학교 가는 길에 함께 줄을 서는 언니는 없었으니까.


그날 우리는 셋, 넷 줄을 맞춰 한 시간 가까이 학교를 향해 걸었다.

새 신을 신고 걷는 길.

학교보다 그 길이 더 신이 났다.


《9화 – 흙길 따라, 미선이네 집까지》

학교가 끝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미선이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큰방, 마루, 고구마 쌓인 작은방…

그 집은 우리 또 하나의 놀이터였죠.


언니가 많은 미선이네는 언제나 따뜻하고 활기찼고,

나는 그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기도 했어요.

그날 처음 맛본 빨간 돼지고기 국—

그 국물의 깊은 맛은

지금도 미선이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떠오릅니다.


미선이네 흙마당에서 웃고, 뛰고, 나눈 그 시간들.

그건 단순한 하루의 추억이 아니라

내 유년의 큰 조각이었어요.


《마루 끝에서 본 세상》

아홉 번째 조각은

우정을 키우던 흙길의 끝, 미선이네 집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당신도 어린 시절 그 흙길을 따라 걸어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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