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정월 대보름 밤하늘에 피어난 불꽃
48화. 정월 대보름, 밤하늘에 피어난 불꽃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마을은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나물을 다듬고 삶고 무쳐내시느라
부엌 앞 부뚜막을 떠날 줄 모르셨다.
무려 아홉 가지가 넘는 나물을
하나하나 정성껏 장만하신다.
부지런한 손길로
도라지, 고사리, 무나물, 가지나물, 시래기, 콩나물, 미역줄기…
모두 삶아내고 간하고 볶아내
커다란 찬통에 가지런히 담아
부뚜막 옆으로 옮겨 두셨다.
보름날엔 새 밥을 짓지 않는다.
전날 미리 지어둔 오곡밥과 나물,
그리고 땅콩, 호두, 잣, 밤 같은 견과류들을
밤새도록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이
우리 마을의 오래된 풍습이었다.
“이건 누구네 것도 조금 남겨두고...”
엄마는 부엌에서 그런 말을 중얼거리셨고,
나는 알아서 그릇을 꺼내고,
남동생들은 밥상 아래로 기웃거렸다.
그러다 밤이 되면
진짜 재미는 그때부터였다.
깡통 하나에 철사를 끼우고,
깡통 안에 숯불과 나무조각을 넣고
입구를 꼭 막은 뒤
360도로 휘리릭 휘리릭 돌리기 시작하면
검은 밤하늘 위로
붉은 불꽃이 원을 그리며 피어올랐다.
마치 별똥별이 빙빙 도는 듯한
쥐불놀이의 불꽃은
그 시절 우리들에겐
가장 환한 축제의 불이었다.
“으악! 내 불 꺼졌어!”
“야, 불씨 더 가져와!”
“우리 논까지 가자! 논이 제일 잘 탄다!”
쥐불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깔깔 웃으며
우리 집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날만은 남동생들 친구들까지
모두모두 우리 집으로 모이는 날이었다.
각자 자기 집에서 싸 온 나물 반찬들,
말린 생선, 호박전, 견과류까지
작은 손에 들려 듬성듬성 가져온 것들을
방바닥에 놓고 둥글게 둘러앉는다.
먹다 보면 모자라기도 하고
어느 집 건 더 맛있다며 다투기도 했지만
“우리 집 거 더 가져올게.”
하고 나는 조심스레 부엌 찬통에서
조금씩 다시 덜어오곤 했다.
엄마는 말없이 그것들을 허락하셨다.
다들 그러라고
큰 찬통에 넉넉하게 음식을 담아두신 거니까.
그날 밤,
뜨끈한 사랑방,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창밖엔 아직도 남은 불씨들이
밤하늘을 장식했다.
대보름은 어른들에겐 나눔의 시간,
아이들에겐 한겨울 밤의 축제였다.
나는 그 따뜻하고 번쩍이는 기억들 덕분에
정월 대보름이 오면
늘 가슴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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