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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부엌의 불 나만의 화로

47화. 부엌의 불, 나만의 화로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어느 순간부터

부엌에서 불을 지피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엄마는 부엌과 우물가를 오가며

김치를 씻고, 생선을 손질하고,

무거운 대야를 들고 허리를 굽히고 계셨다.

그러니 솥에 불을 지피는 일은

내가 맡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시키진 않았지만

나는 당연하게 나서곤 했다.


겨울이면 더 그랬다.

온 집안의 찬 바람이 부엌까지 밀려들 때,

불을 지피는 일은

집을 데우는 일이기도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불씨가 잘 붙지 않거나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올 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나는 불의 성질을 알게 되었다.

마른 나뭇가지의 방향,

솔방울을 넣는 타이밍,

장작의 두께와 간격.


불은 나를 닮아 고집이 세기도 했지만

의외로 섬세하고 민감했다.

한 번 친해지고 나면

내 손길을 타고 잘 자라났다.


그렇게 불을 다스릴 줄 알게 되면서,

겨울 부엌은 나만의 놀이터이자

화로처럼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고구마를 불 속에 넣고

잿더미 속에 묻어두었다 꺼낼 때면

까만 껍질 사이로 노랗게 익은 속살이

포근하게 퍼졌다.

감자도 맛있었고,

말린 북어, 오징어도 숯불 향이 배어 고소했다.


어느 날은

창고에 있던 소고기를 슬쩍 꺼내

쇠그물 위에 얹었다.

얇게 썰어 노릇하게 굽고 있으면

남동생들이 어디선가

총알처럼 달려왔다.


“누나, 하나만 줘! 진짜 하나만!”

그 말은 늘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웃게 되었고,

결국은 고기 한 점, 두 점,

작은 손에 쥐여주며

뿌듯함을 느꼈다.


가끔은 돼지고기나 말린 명태도

엄마 몰래 구워 먹었다.

불을 피운다는 건

그저 온기를 만드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건 기다림이었고,

조율이었고,

작은 삶의 기술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불과 놀고,

불을 다스리고,

불을 통해 가족과 나누었다.

그 불 앞에서

나는 막내를 위해 고구마를 까고,

엄마를 대신해 솥뚜껑을 열고,

어느새 겨울을 이기는

작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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