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머리말

기억의 골목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집 안 풍경보다 학교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가족보다 친구들과 나눈 말들이 더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집에서 나와 학교까지 걷는 길, 그 길을 함께 걷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하굣길이 늦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골목과 사람과 마음의 모양을 배워갔다.


그전까지 세상은 내게 너무 커서, 마루 끝에 앉아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에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가 되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일, 낯선 전학생을 유심히 관찰하는 일, 누구와 짝이 될까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일...

그 모든 것이 나를 바꾸고 있었다.


문희네 집 골목을 따라 걷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걷고 있는지도 몰라.

그 길은 놀이터였고, 교실이었고, 친구의 부엌이었으며, 가끔은 친구네 엄마의 꾸중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골목마다 나는 새로운 마음을 하나씩 배워가며, ‘나’라는 아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시간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시기가 아니라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사람의 눈을 읽고, 마음의 무늬를 살펴본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솔직했고, 감정에 충실했고, 서툴지만 정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골목마다 남아 지금도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의 골목을 다시 걸어보려 한다.

뛰듯 걸으며 친구를 향해 달려가던 발자국 소리, 문 앞에서 “놀다 가”라며 웃어주던 엄마들의 표정,

수줍은 고백과 조용한 다툼, 그 뒤끝까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나.

나는 다시 그 아이의 눈으로, 마음으로, 웃음으로 골목을 걷고자 한다.


《마음의 골목을 걷다》는,

이제 막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아이가 그 안에서 만난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함께 걷는 이 길이 따뜻한 기억의 풍경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