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1화

1화 –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누다


처음부터 미화가 내 곁에 머물진 않았다.

하얀 얼굴에 조용한 말씨, 어른처럼 똑바로 앉아 선생님 질문에 정답을 말하던 아이.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거리감이 났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미화는 놀이 시간마다 꼭 내 곁에 와서 앉기 시작했다.


“같이 할래?”

“응. 너랑 하는 게 좋아.”


나처럼 이것저것 생각 없이 뛰어다니던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고무줄놀이를 하자면 조용히 옆에 앉아 방법을 익혔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미화는 나를 바라보며 늘 이렇게 말했다.


“너랑 놀면… 마음이 편해.”


그 말을 듣고 나도 나 자신이 편해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미화와 함께라면 괜찮았다.

우린 언제부턴가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는 팔짱을 끼고 복도 끝까지 걸어 다녔다.


어느 날, 미화가 조용히 말했다.

“나, 어제 엄마한테 혼났어. 숙제 안 해서.”

내가 말했다.

“나도! 아빠가 소리 지르셨어. 그릇 깨뜨렸다고.”


그 순간, 미화가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웃었다.

그날 우린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혼난 이야기를 하며

속에 있던 감정을 꺼냈다.

미화는 평소보다 훨씬 수다스러웠고,

나는 평소보다 훨씬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미화에게는 두 살 위 언니가 둘 있었다.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나도 위로 언니들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다.

가족 구성도 비슷했고,

가끔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을 말하면

미화는 자기도 그런 적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왜 맨날 나만 뭐라고 할까.”

“맞아. 나도 그래. 그냥 언니는 언니인가 봐.”


미화는 공감의 언어를 아꼈지만,

그 대신 표정과 손짓, 따뜻한 눈빛으로 내 감정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갔다.


우린 함께 교실을 지키고,

함께 운동장을 걸었고,

함께 놀이터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비밀 글씨를 쓰곤 했다.


“미화야, 난 네가 있어서 정말 좋아.”

“나도. 진짜야.”


말끝마다 미화는 나를 꼭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이 나에겐 확신이었고,

그 웃음은 내가 괜찮은 아이라는 믿음이 되었다.


그 시절, 친구라는 단어는 단순히 함께 노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를 비추는 거울 같고,

가끔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작은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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